“국민대접 기쁘지만 선거바람에 동포사회 분열 걱정”

  • 입력 2009년 2월 6일 02시 59분


“국민기본권 되찾아… 드디어 성인이 된 기분

정치 지도자들 글로벌 시각 갖는 계기 마련”

“지금도 각국서 한인회장 선출때 잡음 있는데

대선-총선 지역감정 고개들면 반목 커질 것”

《국회는 5일 본회의를 열어 재외국민 240여만 명에게 대통령선거와 총선 비례대표 투표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과 국민투표법, 주민투표법 개정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의결한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19세 이상 한국 국적을 가진 외국 영주권자에게 대선과 총선 비례대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국내에 주민등록을 두고 외국에 머무는 일시 체류자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도 투표할 수 있도록 했다. 재외공관에서 하는 투표는 2012년 총선부터 가능하다. 다만 국내에 거소(居所) 신고를 한 영주권자는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모든 투표를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4월 8일 경기도교육감 선거와 같은 달 29일 재·보궐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요구한 선상(船上)투표는 이번에는 도입하지 않는 대신 재외공관에 설치된 투표소에서 선원들이 부재자 투표에 준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해외 동포들은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교포사회에까지 선거바람이 몰아쳐 지지정당별로, 정치성향별로 갈라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분위기도 역력하다. 막상 투표가 실시되면 선거법 홍보나 투표소 설치 등 실무적인 문제도 해결할 것이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 환영과 기대

한종우 미국 시러큐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1985년에 유학 와서 한 번도 투표를 못했는데 국민으로서 기본 권리를 되돌려 받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정효권 재중국한국인회 회장은 “2007년 말 17대 대통령선거 때 무려 4만∼5만 명이 1인당 40만∼50만 원의 항공료를 부담하며 귀국해 투표할 정도로 국내 정치에 관심이 많은 재중국 한인들로서는 숙원사업이 해결됐다”고 말했다.

특히 타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투표권을 갖지 못한 교포들은 모처럼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다고 반겼다. 한국 국적 재일동포 김한일(45) 아사히신문 기자는 “일본에서도 참정권이 없는 나는 난생 처음 선거권을 갖게 되어 드디어 성인이 된 기분”이라며 “2세 이하 재일동포들이 한국에 대한 소속감을 갖는 계기도 될 듯하다”고 말했다.

프랑스 리옹3대 이진명 교수도 “프랑스에 살면서 국적을 취득하지 않을 경우 장기체류증을 10년마다 자동 갱신한다. 그러나 국적이 없으면 투표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며 “이곳에서도 한국에서도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교포가 많은데 이번 조치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반겼다.

멀리서나마 한국 정치를 성숙시키는 기회로 삼겠다는 반응도 있다.

지호천 모스크바 한인회장은 “지난해 국회의사당 난동 사태를 보면서 주변 러시아인들이 ‘한국 정치는 왜 저 모양이냐’고 물어 난감했다”며 “그런 식의 우물 안 개구리 행동이 세계화 시대에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표’로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 박윤식 교수는 “한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1세대 교포들은 조국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크다. 이들의 관심을 표로 이끌어낸다면 한국의 국제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정치 지도자들도 교포들의 정치 성향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므로 글로벌 지도자가 성장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한편서는 우려

제일 큰 걱정은 ‘갈등의 정치문화’가 해외동포들에게까지 흘러가 한인사회가 분열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다. 지금도 각지에서 한인회장 뽑는 데 잡음이 있는데 대통령·국회의원 선거 바람까지 불 경우 지역감정까지 고개를 드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미국교민 중 많은 사람은 “교민들의 분열과 역풍이 심할 것이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대도시엔 국내 정당 지부가 생길 것이고, 지역별 이념별로도 나뉠 것”이라면서 “지금도 감투 욕심 때문에 반목이 심한데 더 심해질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한 교민은 “교민 수가 얼마 안 된다 하더라도 박빙 선거전이 펼쳐지면 교민들이 캐스팅 보트를 쥘 수 있다”며 “그러나 오래 체류한 사람들은 한국의 현실을 거의 모르고 인터넷으로 접하는 피상적 정보가 전부이기 때문에 과연 그들의 정치 참여가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라고도 했다.

김동석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 소장은 “그렇지 않아도 다른 아시아 민족에 비해 미국교민들은 영어 구사력도 떨어지고 마음이 항상 한국을 향해 있어 문제인데 투표권까지 갖게 되면 더 심해질 수 있다. 미국에 정착해 뿌리를 내리는 게 장기적으로도 한미동맹에 도움이 되는데 출신지역 지지정당별로 한국 이야기를 하며 분열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특파원 종합

▼부정선거 감시 - 투표소 확보 문제 해결해야▼

재외국민 투표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부정선거 감시 문제와 투표소 설치 문제에 대한 우려가 많아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국의 경우 9개 지역에 한국 정부의 공관이 들어서 있는데 960만 km²에 이르는 방대한 면적의 중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70만 한국인이 투표하기에는 투표소가 너무 적다는 지적이다.

김희철 재외동포정책위원회 민간위원 겸 전 재중국한국인회 회장은 “각 지역의 재중국 한국인회 사무실에서 투표하는 방안이나 우편, 인터넷투표 등 실질적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미국 내 총영사관의 경우 직원이 10명 미만인 경우가 대다수인데 최소한 수천에서 수만 명이 투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 투표 관리가 가능하겠느냐는 지적과 함께 공관원들이 투표 관리 업무를 맡으면 야당에서 공정성 논란을 제기할 개연성도 있다.

지역별로 특수한 사정도 있다. 일본에 살고 있는 서원철(57) 재일본대한민국민단 국제국장은 “재일동포들의 참정권 요구에 거부감을 표해 온 일본 우파들이 그동안 민단이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재일동포들의 일본 내 지방참정권 요구 운동에 반대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각에서는 “교포사회의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을 지금부터라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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