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낮 경남 창원시 대원동 현대로템 공장의 전차주행 시험장.
최종 점검팀의 수신호에 맞춰 갓 출고된 K1A1전차들이 2.1㎞ 구간의 시험장을 쉴 새 없이 질주했다.
전차 뒤편에 소음기가 장착됐지만 50여t의 육중한 차체가 최고속력(시속 65㎞)으로 달리자 땅이 흔들리며 '콰르릉'하는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주행장 옆에선 다른 K1A1 전차가 제자리 360도 회전과 포탑 선회 등 작동성능을 점검했다. 질주를 끝낸 전차들은 60도 경사면과 요철 및 수상구간 통과 등 성능 검증을 거친 뒤 일선 부대로 배치된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최종점검팀과 함께 K1A1전차에 올랐다. 1200마력 디젤엔진을 탑재한 전차는 웬만한 곡선 구간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통과할 만큼 기동력과 민첩성을 보였다. 전차가 전속력으로 달리자 거센 맞바람으로 눈을 뜨기 힘들었고 급선회할 때는 몸이 휘청거려 촬영하던 카메라를 놓칠 뻔 했다.
주행시험을 끝낸 뒤 출발선에 멈춰 120㎜ 주포를 치켜세운 전차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맹수처럼 보였다.
회사 관계자는 "K1A1 전차는 동급전차보다 탁월한 화력과 기동력, 생존성을 갖췄다"며 "연말부터 양산에 들어갈 차기전차(K2)는 K1A1보다도 한 세대 앞선 '디지털 전차'로 세계 정상급 성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방산수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때 '최고수훈'이 바로 차기전차였다. 방위사업청과 현대로템이 터키와 약 3억8000만 달러 규모의 차기전차 기술 이전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터키 군 수뇌부는 이 업체를 방문해 전차엔진 및 변속기, 포탄자동장전시스템, 포신 및 특수장갑 등 국방과학연구소(ADD)와 함께 20여 년간 국산전차를 개발하면서 축적한 제작기술 수준을 확인한 뒤 시제품 단계의 차기전차를 낙점했다. 이 계약으로 현대로템은 우리나라로서는 처음으로 지난해 세계 100대 방산업체에 올랐다.
전차를 생산하는 중기(重機)공장장인 김낙회 이사는 "미국과 독일의 경쟁업체를 꺾고 터키 시장 공략에 성공한 것은 한국 전차기술의 쾌거였다"며 "터키를 교두보로 삼아 중동시장을 개척하는데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 안내로 돌아본 수만 평 규모의 공장 내에선 수백 명의 직원들이 전기배선과 엔진탑재, 포탑 결합 등 각자 자신들이 맡은 공정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20여 년간 포탑과 차제조립을 맡아온 이상대 씨는 "모든 직원들이 내 가족과 나라를 지킬 육군의 핵심전력을 생산한다는 자부심이 강하다"고 말했다.
K1A1 전차는 120여 개의 협력업체가 제작한 총 3만5000개의 부품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립해야 제 모습을 갖춘다.
국내 유일의 전차제작업체인 현대로템은 1983년 미국에서 기술을 이전받아 제작된 K1 전차를 조립 생산했고 1999년부터 지금까지 국내 독자기술로 개발된 K1A1 전차 400여 대를 만들었다.
2011년 이후엔 K1A1 전차 생산을 중단하고 차기전차 양산에 주력할 계획이다.
중기생산기술팀 조현표 부장은 "차기전차 이후엔 강력한 화력과 첨단장비를 탑재한 30t 규모의 무인전차가 등장할 것"이라며 "현재 관련기술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일각에서 차기전차의 생산축소 주장이 제기된 것에 대해 회사 측은 "차기전차의 생산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면 해외수주경쟁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30여 년간 축적한 세계 최고 수준의 전차제작기술이 수출시장에서 결실을 맺도록 군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