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세안의 대화 상대국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였듯이 10개국 정상을 한국으로 초청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어렵게 초청한 정상을 모셔놓고 기념행사 수준으로 끝내면 크게 실망할 것이다. 일본과 중국도 이런 정상회의를 몇 년 전 가졌으나 라이벌 의식 속에서 경쟁적으로 개최한 만큼 지역 협력 발전에 대한 기여도는 미미하다. 중국 일본과 차별화하여 진정으로 동아시아 지역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우리가 의도하는 대로 아세안에서 우리 위치를 회복하는 한편 외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한국과 아세안의 최대 공통 관심은 바로 경제위기이다. 10년 전 경제위기 때 세계화 시대에 동남아와 동북아라는 지리적 구분은 의미를 상실했다고 선언하고 동아시아 공동체 추진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이번 정상회의는 위기 속에서 개최된다. 따라서 위기 극복 방안 및 앞으로의 예방책과 함께 위기가 다시 발생할 경우 어떻게 공동 대처할지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다행히 1990년대 위기 이후 동아시아는 이런 논의를 계속해 일부 결실을 보고 있다. 치앙마이 합의(CMI), 채권시장 설치, 한중일의 아세안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추진, 민간기업 차원의 지역분업 확대가 그 예이다. 예상의제를 감안하되 정상회의와 병행하여 외교부, 재무부 및 중앙은행 총재, 무역부 장관 회의를 각각 개최하여 구체적인 결과를 산출하도록 준비해야 한다. 에너지 장관 회의도 함께 개최할 수 있다. 지역 협력 문제는 정상의 직접적인 관심과 지지만이 실질적인 진전을 가능하게 하는 의제이다.
또 어떠한 형식으로든 중국과 일본의 참여를 확보해야 한다.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에 중국과 일본의 참석은 상식적이지 않다. 그러나 두 가지 점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 있는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첫째로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다룰 지역 협력 문제, 특히 위기 공동 대처 문제는 중국과 일본의 참여 없이는 해결하기 어렵다. 둘째, 동아시아 지역 협력 문제에 있어서 아세안이 기대하는 한국의 역할이다.
아세안이 지금까지도 한국을 높이 평가하는 점은 앞에서 소개한 대로 1990년대 경제위기 때 동남아와 동북아의 지리적 구분을 철폐하자고 주장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추진하던 모습이다. 한국은 당시 동아시아의 비전을 제시하는 현인 그룹의 좌장(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을 맡았고 중국과 일본이 적극 참여토록 조력하여 큰 성과를 거뒀다. 중국과 일본이 라이벌 의식 속에서 나서지 못하는 틈새를 한국이 메운 셈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지역 협력 증진을 위하여 아세안과 힘을 합치기를 원한다면 어렵더라도 중국과 일본을 참여시켜야 한다. 아세안은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선두주자인 한국이 갑자기 동북아 시대 구상으로 방향을 전환한 데 대해 크게 실망했다.
지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우리 외교가 외연을 확대할 때 비로소 활기 있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옛 공산권과 관계를 맺은 북방정책이 대표적이다. 이제 우리는 동북아에 한정된 모습에서 탈피하여 세계로 향하는 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첫걸음은 역시 앞마당인 동아시아 외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선진 한림대 교수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