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北허상에 빠져
김일성의 주체사상 추종
南친북세력 잘못 파헤쳐
북한 바로알기 노력할것”
“내 생각이 변한 것은 기근에 허덕이는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내가 지적으로 나태했고 의존적이고 교조적이었기 때문에 북한의 허상에 빠져들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25일 고려대 대학원 북한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는 계간 ‘시대정신’ 오경섭 편집장(39·사진)은 자신의 학위 논문 첫머리를 ‘자기고백’으로 시작했다.
‘감사의 글’ 첫 부분에 대학생 시절 자신의 종북(從北·북한 추종) 행적을 반성하고 북한인권 운동가를 거쳐 북한전문가가 되기까지의 ‘회심’ 과정을 솔직하게 밝힌 것이다.
그는 1989년 3월 전북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해 한동안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의 외곽 조직에 몸담은 ‘주사(주체사상)파 운동권’ 학생으로 활동했고 이로 인해 한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내가 속한 조직은 남한의 혁명화를 목표로 활동했고 그 대안으로 생각한 모델이 북한 체제였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주체사상, 김일성 김정일의 저작을 반복해서 읽었고 한국민족민주전선(북한의 대남기구)의 자료를 학습했다.”
그러나 1995년 이후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북한의 경제난과 대량 아사(餓死)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좋은벗들’의 법륜 스님과 북한인권시민연합의 김영자 사무국장 등의 강연을 들으며 1997년에 그는 ‘전향’을 했다.
“북한 체제는 내가 생각했던 이상사회가 아니었다. 나는 두 가지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했다. 내가 왜 그렇게 쉽게 북한의 허상을 추종했는가 하는 문제와 어떻게 하면 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을까 하는 문제였다.”
당장 행동이 필요했다. 그는 1998년 전북지역 대학총학생회연합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탈퇴를 주도했다. 1999년 10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뒤 2003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을 맡아 북한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북한인권 운동가로서 그는 북한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고 2003년 9월 고려대 북한학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6년을 일하면서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고된 시간을 보냈다.
오 씨는 논문에서 북한이 1990년대부터 들고 나온 선군(先軍)정치를 국가적 차원의 위기관리 시스템이라고 규정했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총체적 국가 위기를 맞아 군을 앞세운다는 이 시스템을 활용해 국가 붕괴를 막고 김정일과 일부 지배층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 인민들의 굶주림과 대량 아사, 공식 사회주의 경제의 붕괴라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오 씨는 “선군정치가 김정일 지배 체제를 유지했지만 경제 파탄을 초래해 또 다른 국가 위기를 낳는 ‘부정의 악순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그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은 친북 세력의 잘못을 과감하게 지적하고 북한 바로 알기와 북한 주민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직도 친북활동을 하는 이들은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더는 굶주리는 인민들의 현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의 열정을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데 쏟아 붓기를 제안합니다.”
그는 선배인 ‘386세대’ 북한 연구자들이 노동신문이나 김일성 김정일 저작 등 북한 지도부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이른바 ‘공간(公刊) 문헌’을 활용하는 연구에 매몰돼 있어 결과적으로 북한의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 씨는 신진 연구자로서 학계와 연구자들이 북한 체제의 ‘수령 독재적 성격’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도 잊지 않았다.
그는 “신진 연구자들이 선배들의 한계를 뛰어넘어야 학계가 ‘북한 바로 알기’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