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충격과 실망이 크다. 한 관계자는 “이탈리아 정부가 M-346 선정 조건으로 막판에 사막의 국제자동차경주대회(F-1) 경기장 유치 등 산업협력 프로젝트들을 총동원해 아랍에미리트 측의 환심을 산 결과”라고 말했다.
4년 넘게 공들인 T-50의 수출이 좌절된 주요인은 범정부 차원의 치밀한 전략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T-50이 경쟁 기종보다 성능은 우수하지만 50억 이상 비싼 만큼 아랍에미리트의 구미를 끌 ‘당근’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못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30여 개의 산업협력 프로젝트를 실무선에서 제안했지만 아랍에미리트는 묵묵부답이었고, 아랍에미리트의 실질적 국방책임자인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탈리아는 지난해 말부터 전방위적인 인센티브 공세를 벌였다고 한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1월 말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알나하얀 왕세자를 면담했을 때 이미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당시 김 의장의 T-50 선정 요청에 알나하얀 왕세자는 “기종의 우수성뿐 아니라 산업협력까지 해줄 나라에 우선권을 줄 것”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2006년 6월 방한해 T-50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호평했던 때와는 딴판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경부와 국방부 등 관련 부처에 즉각적인 대책 마련을 주문했고, 이윤호 지경부 장관이 다음 달 초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해 막판 설득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결국 한 발 늦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2007년 1월 서울시장 재직 때 T-50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그는 T-50을 꼼꼼히 살펴보면서 많은 질문을 던졌고, 조종석에 타 보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1년 뒤엔 대통령 당선인으로 알나하얀 왕세자에게 T-50 선정을 부탁하는 서한을 보내기도 했다.
T-50은 대당 수출가격이 약 2500만 달러로 중형승용차 1000여 대와 맞먹는다. 아랍에미리트 수출이 성사됐다면 25억∼30억 달러의 외화 수익은 물론 앞으로 해외시장 진출에 순풍을 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수출 도전이 무산되면서 싱가포르와 폴란드 등 한국이 노려온 다른 해외시장 진출도 힘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기술진 1300여 명의 땀과 눈물이 밴 골든 이글(T-50의 별칭)의 날개가 이대로 꺾일 순 없다”며 “9월 기종 선정을 앞둔 싱가포르 고등훈련기 시장을 뚫기 위해 전력투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