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카드’ 떨어진 北… 전례없이 민항기 상대 으름장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3월 7일 02시 59분



서해 경계집중 틈타 동해서 위협 ‘긴장 극대화’

“공세 순서-내용 뒤죽박죽… 초조함 반영” 분석도

“가히 성서격동(聲西擊東)이라고 할 만하다.”

북한이 5일 동해 영공과 주변을 이동하는 한국 국적 민간항공기의 비행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밝힌 데 대해 한 북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이 예고한 대로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휴전선 일대의 군사분계선(MDL) 위협에 대비하고 있을 때 동해 상공의 군사적 위협 카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날 조치로 육상과 해상은 물론이고 공중까지 전방위에 걸친 대남 무력도발을 위협했다. 특히 민간 부분에 대한 무력도발 가능성까지 제기해 긴장의 극대화를 노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의 잇단 각종 도발 위협에는 북한 지도부의 불안감과 초조해하는 심리상태가 엿보인다고 지적했다.


▽대남, 대미 압박용 카드=북한은 올해 1월 17일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을 TV에 등장시켜 남한을 상대로 한 ‘전면 대결태세 진입’을 선언했다. 이후 서해 NLL(1월 30일)과 MDL(2월 28일)을 통한 위협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는 서해와 육상 경계선에 걸쳐 집중적인 경계태세를 폈다.

이 때문에 5일 북한의 민항기 위협 성명이 발표되자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국내외 항공사들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동해 북측 영공에서의 도발 위협 카드를 내놓을 가능성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새로운 도발 위협은 일단 관심 끌기에 성공했다. 미국 국무부 등 국제사회는 “민간항공기에 대한 무력 위협은 안 된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북한은 무력도발 위협의 범위를 확대하며 긴장의 강도를 높이는 효과를 거뒀다. 한국인들은 과거 KAL기 격추 사건 등 냉전시대의 항공기 테러 사건을 떠올렸다.

북한은 이를 토대로 한미 군사훈련을 통한 ‘북침 위협’에 제동을 걸었다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앞둔 주민들에게 홍보를 강화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이 지난달 24일 대포동2호 미사일 발사를 예고한 데 이어 이번에는 민항기에 사전 ‘주의신호’를 보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사전 예고도 없이 미사일을 발사한 1998년과 달리 ‘인공위성’ 발사의 명분을 쌓으려는 북한식 대외 메시지라는 것이다.

▽북한 지도부의 혼란과 초조감의 반영=그러나 다른 해석도 있다. 이번 조치에는 북한 지도부가 올해 대남 무력 위협 공세를 펴는 과정에 내보인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상태가 그대로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북한의 성명은 여러 측면에서 이례적이다. 북한은 해마다 3월 초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비난했다. 조평통의 성명이나 담화가 나왔고 외무성이나 조선평화옹호위원회 대변인 등도 나섰다. 그러나 민항기를 위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성명은 북한이 올해 초부터 계속해 온 대남 공세에 비해 차분하고 대남 비방의 수위도 꽤 낮다. 조평통 대변인이 2일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비난하면서 “그가 물러나야 남북관계 정상화가 시작된다”며 이 대통령의 하야까지 거론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은 1998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7월) 후 장거리미사일 발사(8월)를 거쳐 12월에야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나타나 위기를 순차적으로 고조시켰지만 올해는 총참모장을 먼저 등장시켰다. 공세의 순서와 내용이 뒤죽박죽인 셈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실제로 무력도발을 하자니 남측의 ‘대응 타격’이 두렵고, 말로 할 수 있는 ‘협박거리’를 찾아 민항기까지 위협하다 보니 대외적 비난을 받을 것이 당연해 오히려 수위는 낮추는 등 혼란스러운 대응이 나오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 키 리졸브(Key Resolve) :

한국군과 미군이 매년 3월경 실시하는 연합군사훈련. 기존의 한미 연합전시증원(RSOI)연습의 명칭을 바꾼 것이다. 유사시 한미 연합군이 한반도 이외 지역에서 증원군을 동원해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훈련이다. 올해는 9∼20일 핵추진 항공모함 존스테니스와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군 2만6000여 명, 한국군 2만여 명이 참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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