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물차 타고 부산으로
곽 정책관(53·국장급)은 옛 해양수산부 출신이다. 작년 3월 해양부와 건설교통부가 통합되면서 처음 육상물류를 맡게 됐다.
업무가 손에 채 익기도 전인 6월 13일 화물연대 파업이 터졌다.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7월 한나라당과 정부가 함께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김 의원이 팀장을 맡고 곽 정책관이 정부 측 실무를 책임졌다.
그는 곧바로 서울 서초구 양재동 화물터미널로 갔다. 화물차가 있는 도로에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화물차 운전사에게 부탁해 보조석에 앉았다. 차는 부산으로 향했다. 오후 9시에 서울을 출발해 오전 8시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가는 길에 화물차주들의 불만과 생활고,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 등을 메모장에 가득 채웠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라면을 시켜 같이 먹고 차에서 토막잠도 잤다.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6시까지는 10t 이상 화물차에 대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50% 할인해 주는데 이 시간대를 딱 맞추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 때문에 운전자들이 잠을 못 자고 곡예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할인 시간대를 늘리려고 했다. 하지만 재원이 모자라 일단 통행료 감면 대상을 10t 이하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곽 정책관은 충북 옥천휴게소 등 화물차 전용 고속도로 휴게소에도 들러 3000원짜리 밥도 먹어보고 목욕탕에도 가봤다. 간부가 움직이다 보니 팀원들은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당시 TF에 참가했던 한 7급 직원은 “해양부 출신이라 업무를 잘 모를 줄 알았는데 한 달이 지나고 나니 우리보다 문제점을 잘 꿰뚫고 있었다”고 말했다.
○ 전국 돌며 설명회
화물 운송시장을 정상화하려면 다단계 구조를 깨야 했다. 하청을 주고 있는 운송사와 알선업체들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했다.
화물운송업연합회, 화물주선업연합회 등과 협상했다. 하지만 당장 밥줄이 끊어질 수도 있는데 이들이 순순히 응할 리 만무했다.
곽 정책관은 안 되겠다 싶어 이들 연합회의 회원사들을 만나기로 했다. 일대일로 설득하면 이해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욕하던 업자들 끈질긴 설득에 고개 끄덕
10월 한 달 동안 서울, 광주, 부산, 대전을 돌았다. 200명 정도를 만나러 간 회의장에 600여 명이 몰려온 적도 있었다. 그가 반가워서가 아니었다.
“설명을 하기도 전에 욕이 먼저 들리더군요. ‘저 ××가 우리를 죽이려고 그런다’ ‘너 어디 사냐’…. 인격적인 모독도 많이 당했습니다.”
그는 지금 화물 운송시장이 정상이냐고 따지며 조금씩 고쳐가자고 설득했다. 이번에는 아예 법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대화의 물꼬가 트였다. 중앙부처 국장급 인사가 직접 설명회를 했다는 점도 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대기업 및 정치권과의 갈등도 있었다. 운송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굴지의 대기업이 국회의원 등을 통해 제도 개선을 철회하라고 압력을 가해 왔다. 한 직원은 “곽 정책관이 ‘그래도 소신껏 하라’고 당부했다”며 “덕분에 새 제도가 시장에서 먹힐지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곽 정책관은 “지금도 4월 국회 본회의 상정 예정인 제도 개선 관련 법안을 흔들려는 로비가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 성과와 아쉬움
곽 정책관은 작년 12월 말 ‘화물운송제도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이 방안에는 거래구조를 바꾸기 위해 인터넷상에 ‘화물운송 실적관리 시스템’ 등을 만드는 등 나름대로 근본 대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담았다.
곽 정책관은 “최선이 아닌 차선이다. 재정상의 한계도 있고, 시장 구조를 좀 더 근본적으로 뒤집어 놓지 못하는 점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변의 평가는 조금 다르다. 한 국토부 직원은 “우리는 그때 일하는 방식을 배웠다. 이렇게 하다 보면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곽 정책관은 개선방안을 마련한 뒤 지난달 1급으로 승진했다. 지금은 여수세계박람회조직위원회 사무차장으로 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