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피난생활 하다보니…”
97년 결혼 이후 모습 감춰 2003년 방송사에 포착 뒤 수도권 주변서 숨어지내
“盧정부 ‘北테러 부인’요구” 작년 金씨 편지 공개 파문
12년 만에 공개석상에 나타난 김현희 씨는 야윈 모습이었다.
검정 바지에 점퍼 차림의 수수한 복장으로 부산 벡스코 상봉장소에 들어선 김 씨는 긴 생머리였던 예전과 달리 단발머리의 모습이었다.
김 씨는 “다구치 야에코 씨 가족과의 상봉을 앞두고 며칠 잠을 자지 못했다”면서 지친 표정을 보이기도 했다.
김 씨는 11일 기자들의 질문에 전반적으로 차분하게 대답했지만 대한항공 항공기 폭파 사건의 조작설과 관련한 질문에는 “20여 년이 지난 사건을 누가 했는지 모른다는 게 참 안타깝다.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나는 가짜가 아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1987년 이후 줄곧 한국에서 생활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북한 사투리와 억양이 배어 있었다.
김 씨는 1990년 3월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확정된 후 보름 만에 특별사면돼 안보 관련 외부 강연과 수기(手記) 출간 등 왕성한 공개 활동을 해오다 1997년 결혼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는 1997년 5월 전국 공안검사 대상의 특강에서 “죗값을 치를 때까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같은 해 신변보호를 담당했던 전직 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직원 정모 씨와 결혼했다.
이후 김 씨는 서울과 시댁이 있는 경북 일원을 오가며 2000년 아들, 2002년 딸을 출산하는 등 사회에 적응해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언론과 소설 등을 통해 항공기 폭파사건에 대한 의혹이 다시 불거져 나오면서 그는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3년 하반기 한 방송사가 자택과 친척집 등을 오가는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자 같은 해 11월 중순 이후 잠적했다.
김 씨는 11일 기자회견에서 다구치 씨의 아들인 이즈카 고이치로 씨가 보낸 편지를 받지 못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한국에서) 피난 생활을 하다 보니 받을 수 없었다”고 밝혀 그동안 국가정보원 등 당국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음을 내비쳤다.
실제로 김 씨는 지난해 11월 남편을 통해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상임대표에게 전한 편지에서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국정원 등이 자신에게 방송에 출연해 ‘대한항공기 폭파를 북한 김정일이 지시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고백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가 2007년 대한항공 항공기 사건 재조사를 할 당시에도 국정원과의 면담조사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호의적이었던 국정원이 달라져 이 사건을 재조사하도록 결정한 것에 배신감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김 씨는 모습을 감춘 채 수도권 주변을 전전하며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6년 8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정형근 당시 한나라당 의원(폭파 사건 당시 안기부 수사책임자)은 “김현희 씨는 경기 서쪽 접경 변두리에 꼭꼭 숨어있고 외출할 때도 (얼굴을) 잘 안 나타내려 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힌 바 있다.
부산=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