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女사업가 구금… 한달만에 풀어줘

  • 입력 2009년 3월 20일 03시 00분


에번 헌지커 씨
에번 헌지커 씨
■ 북한의 미국인 억류 사례

북한이 미국인을 억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등 미군 억류 사건과 1999년 민간인 구금 사건이 일어났지만 대부분 정치적으로 원만하게 해결됐다.

뉴욕타임스는 19일 가장 최근에 벌어진 북한의 미국인 억류 사건으로 1999년 6월 캐런 한 씨 사건을 소개했다. 당시 미국 국무부는 중국 국경 근처의 북한 경제특구를 방문한 미국 시민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나중에 신원이 밝혀진 당시 58세의 이 여성은 베이징에서 활동하던 한국계 미국인 사업가였고 1개월간 특별한 이유 없이 억류됐다가 풀려났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에 앞서 1996년 8월 미국인 에번 헌지커 씨가 압록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갔다가 간첩 혐의로 구금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26세이던 헌지커 씨는 6·25전쟁에 참전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로 술에 취해 알몸으로 압록강을 건너 북한으로 들어갔다.

미국은 그해 11월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현 뉴멕시코 주지사)을 대북 특사로 파견했다. 북한은 당초 10만 달러를 요구했으나 ‘인질 몸값은 지불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헌지커 씨의 호텔 숙식비 명목으로 5000달러를 냈다. 헌지커 씨는 풀려난 지 한 달 만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1994년 12월에는 강원도 휴전선 상공을 순찰하던 미군 헬기가 피격되면서 조종사 보비 홀 준위가 북한에 억류됐다. 이때도 리처드슨 주지사가 방북해 북한과 협상을 벌였고 홀 준위는 13일 만에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다른 조종사 1명은 추락 당시 사망해 시신으로 돌아왔다.

북한은 1968년 1월 23일 승무원 83명이 탄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를 원산항 앞 동해상에서 나포했다. 당시 북한은 미그기 두 대와 초계정 구축함 등을 동원했고 이들의 포격으로 미국인 승무원 1명이 죽었다.

승무원들을 인질로 붙잡은 북한은 미국 측에 “영해 침입을 시인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해 12월 23일 길버트 우드워드 미 육군 소장은 ‘오직 승무원의 귀환을 위해서’라는 전제 아래 “미국 함선이 북한 영해에 침입해 엄중한 정탐행위를 한 것에 전적으로 책임을 지고 엄숙히 사죄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에 서명했다.

서명 직후 승무원 82명과 시신 1구는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왔다. 그러나 북한은 선체와 장비는 몰수했고 선체를 1999년경 대동강으로 옮겨 주민들에게 반미 감정을 일깨우는 선전물로 사용하고 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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