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에 나타났다. 조선중앙TV는 이날 오후 김 위원장이 주석단 중앙까지 약 10보를 걸어 입장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그의 당일 행적을 담은 동영상이 TV에 공개된 것은 지난해 8월 건강이상 이후 처음이다. 그는 걷는 도중 왼쪽 다리를 약간 절었고 박수를 칠 때도 왼손을 고정시킨 채 오른손만 움직이기도 했다. 하지만 양팔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흔들면서 입장하는 등 건강을 과시하려는 모습이었다.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의 공개 활동을 수록한 동영상이 7일 공개된 데 이어 그의 건강상태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20일에는 특유의 볼록 나왔던 배가 쏙 들어간 채 주름살투성이의 노인 모습으로 인민과 국제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주석단에 앉아 당원증 또는 대의원증으로 보이는 카드를 흔들었다. 그의 모습은 1998년과 2003년 같은 자리에 앉았던 건강한 장년이 아니었다. 북한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은 이날 오전 11시가 조금 지나 “정오에 ‘중대방송’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정오에 나온 중대방송은 “평양에서 소집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는 김정일 동지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했다”는 내용이었다. 1998년과 2003년 각각 최고인민회의 10기와 11기 1차 회의가 열린 날에도 북한 매체들은 중대방송을 예고하고 국방위원장 재추대 소식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1998년 이후 10년 동안 1인 독재의 본질적인 모습을 유지한 채 근본적인 변화를 거부했다. 이날 헌법개정과 인사 역시 근본적인 처방은 아닐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北, 권력 공고화 필요할때면 개헌 단행▼ 북한이 11년 만에 사회주의 헌법을 개정했다. 북한이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에서 헌법을 개정할 것인지는 김정일 3기 체제의 안정화와 후계구도 구축과 관련해 비상한 주목을 받아 온 관심사였다. 그동안 국내 전문가들은 북한 내부에 사전 움직임이 없었다는 이유로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중국의 대북 소식통은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선군정치를 강화하기 위해 국방위원회를 상설화할 것”이라며 “이 경우 김 위원장의 아들 중 한 명이 국방위원회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본보 9일자 A5면 참조 北국방위, 권력핵심 ‘3호 청사’ 접수
북한 지도부는 1948년 9월 헌법을 제정한 이후 현재까지 한 차례의 제정과 세 차례의 개정을 통해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해왔다. 북한은 1972년 12월 현재의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해 국가주석제를 만들고 김일성 주석을 추대해 ‘수령 절대주의 체제’라고 불리는 유일지도체제를 확립했다. 1992년에는 지도이념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삭제하고 주체사상을 내세웠으며 군 통수권을 국방위원회로 이관했다. 이는 1993년 김정일 당시 국방위 부위원장의 위원장직 승계를 염두에 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 김 주석이 사망한 뒤인 1998년 9월 두 번째 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위의 권한을 강화하는 대신 최고인민회의와 내각이 권력을 분점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 같은 권력 분점은 김 위원장이 ‘선군정치’를 강화하면서 경제 위기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분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