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시위대, 택시 동원해 정상들 숙소 포위 회의장 유리문 깨고 난입… 泰정부 “대피” 李대통령, 일정 앞당겨 하루 일찍 귀국
12일 오전 1시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이명박 대통령이 탑승한 아시아나 특별전세기가 착륙했다. 이 대통령은 당초 이날 오후 9시 45분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태국 파타야에서 발생한 반정부 시위 사태로 일정을 앞당겨 급거 귀국했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이 대통령을 동행해 파타야에 도착한 것은 10일 오후 3시경(현지 시간)이었다. 이 대통령은 현지 도착 직후 로열클리프 호텔에서 한-태국 정상회담을 가졌으나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아세안+3’ 정상회의 장소이기도 한 이 호텔을 탁신 친나왓 전 총리를 지지하는 반정부 시위대가 에워싸는 바람에 정문을 통해 나가려던 이 대통령 일행이 1시간 반가량 발이 묶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태국 정부는 시위대 규모가 갈수록 커지는데도 정상회의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11일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빨간 티셔츠 차림의 반정부 시위대는 로열클리프 호텔의 출입을 봉쇄했다. 또 택시 50여 대를 동원해 이 대통령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묵고 있던 두싯타니 호텔 주변에서도 시위를 벌였다. 경찰과 군이 동원돼 있었지만 회의장 주변으로 몰려드는 시위대를 제지하지도 않았다. 한-아세안 정상회의, 아세안+3 정상회의 등 모든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태국 정부는 헬기나 보트를 이용해 이 대통령과 원 총리를 회의장으로 이동시키는 방안까지 검토했으나 안전 문제로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 정상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실상의 ‘무정부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정상적인 회의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이 대통령은 12일로 예정됐던 한중일 정상회의를 하루 앞당겨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도록 했다. 또 아세안 회원국 정상들과 일일이 통화를 하고 “회의가 열리지 못하더라도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는 뜻을 전했다. 그 사이 시위대 1000여 명이 로열클리프 호텔 유리문을 깨고 회의장 안으로 난입했다. 시위대는 아피싯 웨차치와 총리를 찾아내 처단하겠다며 호텔 내부를 휘젓고 다녔다. 태국 정부는 호텔 주변에 헬기를 보내 일부 정상들을 파타야에서 동쪽으로 약 30km 떨어진 우따빠오 공군 비행장으로 긴급 대피시켰다. 공포에 질린 일부 대통령 부인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아피싯 총리는 오후 2시경 파타야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정상회의를 무기한 연기하고 각국 정상들의 안전 귀국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 대통령의 조기 귀국 방침도 확정됐다. 다른 국가들이 정상회의를 연기하자고 했으나 태국 정부는 회의 장소를 푸껫에서 파타야로 바꿔가며 회의를 강행했다가 국제적 망신을 샀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 일정을 모두 마친 뒤 오후 5시 반경 비행기에 탑승했다. 동행기자단은 기사 송고와 시내 교통 사정 등으로 대통령보다도 늦게 공항에 도착했다. 대통령 의전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동행기자단 보안검색을 끝낸 특별기는 이 대통령이 비행기에 오른 지 30분 뒤인 오후 6시경에야 이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