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I 오해와 진실

  • 입력 2009년 4월 15일 03시 00분


특정국 대상으로 안해… 北불만 명분없어

PSI 아니라도 무국적 선박은 검문 가능

2003년 10월 영국과 미국 정보관리들은 우라늄 농축에 사용하는 원심분리기 부품 수천 개가 리비아로 향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걸프 만의 두바이 항을 떠난 독일 국적의 선박 ‘BBC차이나’호가 컨테이너 5개에 부품들을 싣고 리비아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양국은 즉각 독일 정부에 연락했다. 독일 정부는 선박 소유주를 찾아 배의 항로를 이탈리아 타란토 항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이탈리아 당국은 즉각 이 배를 수색해 화물을 압수했다.

이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작동시켜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이끌어낸 결정적 계기가 됐다. PSI 회원국들의 정보 교류와 긴밀한 협조를 통해 WMD 확산을 막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PSI가 여전히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거나 한국의 PSI 전면 참여는 북한과의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거나 하는 등 오해가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PSI를 둘러싼 오해와 실상을 문답으로 정리해본다.



Q: PSI에 가입하면 남북 충돌로 이어지나.

A: 현재 94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PSI는 특정국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북한이 PSI 자체를 겨냥해 불만을 나타낸다면 몰라도 한국이 어떤 국제체제에 가입한다는 이유로 위협하는 것은 국제관례에도 어긋난다. 게다가 북한은 우방국인 러시아가 PSI에 가입할 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남북 충돌 가능성이라는 오해가 생긴 이유는 PSI 차단 작전이 마치 공해상에서 이뤄지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PSI는 국제법에 따라 영해·내수·영공 등 참가국이 관할하는 영역에서 작전이 이뤄진다. 공해에서는 선박 소유국의 동의 또는 별도의 승선협정이 없이는 외국 선박에 승선하거나 검색할 수 없다. 따라서 공해상에서도 정선 및 검색, 강제퇴거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 남북해운합의서보다도 강도가 약한 PSI 전면 참여를 북한이 문제 삼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으로 보인다. 또 회원국은 모든 PSI 활동에 참여하도록 강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불필요한 충돌을 피할 수 있다.

Q: 한국 정부가 ‘전면 참여’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A: 우리 정부는 PSI 8개 항 중 2005년부터 미국의 요청으로 참가국 간 역내·외 훈련 참관단 파견, 브리핑 청취 등 옵서버 자격으로 가능한 5개 항에 이미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반발을 의식해 △역외 차단훈련 물적 지원(선박 항공기) 제공 △역내 차단훈련 물적 지원 제공 △PSI 정식 참여 등 3개 항의 가입을 유보해 왔다. 정부의 전면 참여는 나머지 3개 항에 참여한다는 뜻이다. 이는 PSI 주도국인 미국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는 형식으로 이뤄진다.

Q: PSI가 아니면 검문을 못하나.

A: PSI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라도 승선해 검문할 수 있는 상황이 있다. 국제해양법에 따르면 소속 국가의 깃발을 달지 않은 무국적 선박은 공해에서도 검문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2년 12월 예멘으로 향하던 북한 서산호도 이런 이유로 붙잡혔다. 당시는 PSI가 만들어지기 전의 일이었지만 이 사건 이후 미국이 PSI를 추진함에 따라 서산호 사건처럼 공해상의 정선 및 검문이 PSI라는 오해가 있었다. 당시에도 서산호는 국기를 달지 않은 무국적 선박이었기 때문에 국제법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Q: PSI가 아니어도 검문할 수 있는데 왜 굳이 가입하나.

A: 아직도 전 세계에 관리되지 않은 핵물질이 많이 있다. 전 세계가 WMD 확산을 우려하는 이유는 WMD가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WMD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국제체제들이 늘어날수록 이런 위험을 낮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BBC차이나’호 사건처럼 어느 한 나라보다는 참여국의 수가 늘어날수록 정보가 많이 모이고 효과도 커진다. 앞으로 국제질서의 주요 흐름이 WMD 확산 방지에 맞춰지는 만큼 한국도 새로운 체제에서 지도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지고 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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