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인질안전 고려 ‘PSI’ 고심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4월 18일 02시 58분



北, ‘억류 南근로자 논의’ 21일 남북 접촉 제의

북한이 개성공단에 억류돼 있는 현대아산 근로자 A 씨의 신병문제를 논의하자며 남북 당국 간 접촉을 전격 제의했다. 북한은 A 씨를 17일 현재 19일째 억류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이 16일 오후 남북 당국 간 팩스를 통해 21일 오전 10시에 만나자고 제의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접촉 당사자나 장소는 특정하지 않았다. 북한이 한국 정부와의 대화를 요구한 것은 군 당국 간 실무 접촉을 제외하면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인 지난해 2월 이후 1년 2개월 만이다.
▽정부, 이틀째 긴밀 대응 논의=정부는 현인택 통일부 장관을 중심으로 17일 이틀째 회의를 열고 대응 방안을 숙의했다. 북한이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또 A 씨가 송환될 경우 우리 측에 어떤 요구를 할지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남북 당국 간 회담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국자는 “이번 접촉이 성공할 경우 얼어붙은 남북 관계가 풀리는 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주말경으로 예상되는 정부의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발표가 21일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 국민의 신병 문제를 협의하자고 제의한 상황에서 PSI 참여 선언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략적 위기관리인가, PSI 사전 제동인가=북한은 지난달 30일 A 씨를 억류한 직후 우리 측에 보낸 통지문에서 “존엄 높은 우리 공화국의 정치 체제를 비난하고 여성 종업원을 변질, 타락시켜 탈북을 시키려고 책동하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북한이 회동을 제의한 의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北의 위기탈출 전략? PSI 차단 노림수?
일단은 북한이 5일 장거리 로켓 발사와 14일 6자회담 불참 선언 등 국제사회에 벼랑 끝 전술과 맞대응 카드를 내놓은 데 이어 협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전략적 위기관리’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뉴욕 채널을 통해 미국과 직접 대화를 시작했다고 미국의 로버트 우드 국무부 부대변인이 16일(현지 시간) 밝혔다.
이와 함께 한국 정부의 PSI 전면 가입 발표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노림수일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명의의 담화를 내고 남한의 PSI 참여는 자신들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위협했다. A 씨의 안전에 대한 고려는 정부가 당초 15일로 예정했던 전면 참여 발표를 연기하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PSI 참여 발표 고민=정부는 PSI 전면 참여 발표와 연기라는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검토하고 있다. 21일 이전에 PSI 전면 참여를 발표할 경우 남북 당국 간 접촉이 무산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북한이 당국 간 접촉을 일방적으로 무산시키면서 남측의 PSI 가입을 핑계로 들 수도 있다. 이 경우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했다는 여론의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정공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PSI 전면 참여 발표를 이번 주말경 강행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는 17일 A 씨 처리 문제를 우리 정부의 PSI 전면 참여에 연계시키지 말라고 북측에 촉구했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북한은 (두 사안을) 연관시키지 말아야 한다”며 “인도적 보편적인 문제는 정치·경제적인 상황에 결부되어질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1년 2개월 만에 당국 회담 열리나=남북 당국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을 경우 지난해 2월 13일 끝난 남북도로협력분과위원회 1차 회담 이후 처음이다. 이후 몇 차례 남북 간 군사 접촉이 있었지만 당국 간 대화는 전혀 없었다. 현 통일부 장관은 3월 취임한 이후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강조해왔다. 역설적으로 A 씨 억류라는 극단의 상황이 당국 간 대화 재개의 단초가 되는 셈이다.
현 장관은 최근 북한과의 긴장 완화 및 지원 의지를 강조해왔다. 그는 16일 폴커 카우더 독일 연방하원 기민·기사당 원내대표와 면담하면서 북한 장거리로켓 발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 행보에 보조를 맞추면서 남북 관계의 긴장 악화를 막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해결 노력 결실 의미=앞서 정부는 공식, 비공식 채널을 통해 북측에 A 씨 접견을 요청해 왔다. 최근에는 중국 등 북한에 외교 공관이 있는 주변국에 도움을 청해 사건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계속했다. 조건식 현대아산 사장이 17일 공단 현지를 방문했으며 18일엔 문무홍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장이 방북한다. 조 사장은 A 씨가 풀려날 때까지 계속 개성에 체류할 예정이다. 그러나 북한은 우리 측이 A 씨를 면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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