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해 3월 27일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에 주재하던 남측 당국자 11명을 사실상 추방했다. 북한은 자국 영토 내에 있는 유일한 당국간 접촉라인을 끊은 뒤 당국은 배제하고 민간과 대화하는 ‘통민봉관(通民封官)’ 전술을 시작했다. 석 달 뒤인 6월 22일 남북 군사회담 북측 대표단은 남북한 통신선 개보수 문제를 들고 나와 ‘개성 및 금강산 사업 위기론’을 처음 거론했다.
7월 11일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과 9월부터 공론화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 파동에도 개성공단은 꾸준히 유지됐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다시 공개 활동을 시작한 10월 이후 위기는 현실화됐다. 남북 군사회담 북측 대표단은 10월 2일 남측 민간단체들의 대북 전단(삐라) 발송을 문제 삼으며 개성공단과 금강산을 오가는 군사분계선 통행 제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북한은 여러 차례 위협을 반복한 끝에 12월 1일자로 육로 통행을 제한하는 이른바 ‘12·1조치’를 단행했다. 개성공단 상주인력을 880명으로 제한하고 통행 횟수도 줄였다. 개성관광과 경의선 남북 열차 통행도 중단됐다.
북한은 올해 3월 9∼20일 한미 연합군사연습 ‘키 리졸브’가 북한에 대한 침략연습이라고 주장하며 군 통신선을 끊고 세 차례나 개성공단 통행을 전면 차단하며 사실상 남측 인력과 관계자들을 개성공단에 억류했다. ‘12·1조치’에 이은 북한의 통행 차단 조치에 따라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은 조업에 차질을 빚었다. 공장 가동 인력의 출입이 제한되고 원부자재의 공급이 중단되자 개성공단 입주 기업인들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북한의 공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달 30일 개성공단에서 근무하던 40대 A 씨를 연행해 21일까지 23일째 남측 인사와의 면담 또는 변호인 접견을 막은 상태에서 조사를 벌였다. 북한은 A 씨를 연행한 직후 남측에 통지문을 보내 “존엄 높은 우리 공화국의 정치체제를 비난하고 여성 종업원을 변질, 타락시켜 탈북 시키려고 책동했다”고 주장했다. 또다시 개성공단을 대남 압박카드로 꺼내 든 것이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