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서 돌아오는 南 화물차량 21일 오후 3시경 남북 당국 간 회의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개성공단을 출발한 남측 화물차량이 군사분계선을 지나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빠져나가고 있다. 파주=전영한 기자
북측 “개성공단 특혜 전면 재검토”
임차기간 축소-임금 인상 등 협상카드 활용 南흔들기
北측 원하는 장소에서 접촉…11시간 기다려 22분만에 끝
우리측 근로자 면담도 못해
21일 남북 정부 당국 간 접촉은 지난해 2월 이후 1년 2개월 만에 열린 것이었지만 불과 22분 만에 끝났다. 짧은 만남을 위해 양측은 이날 오전 9시 반부터 11시간 동안 치열한 기 싸움을 벌였다. 남측은 일곱 차례에 걸친 예비 접촉을 통해 이날로 북한에 23일째 억류돼 있는 현대아산 근로자 A 씨와의 면담을 끈질기게 요구했지만 북측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 긴 기다림에 짧은 만남
우여곡절 끝에 이뤄진 남북 공식접촉은 양측이 각자의 요구를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는 형식으로 전달하고 그 내용이 담긴 문건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북한이 16일 통보하겠다고 예고한 ‘중대사안’의 내용은 당초 남측이 예상했던 최악의 내용은 아니었다. 북측의 요구는 개성공단 파행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며 기존 계약을 전면 재검토하자는 내용이었다. 즉 강경한 대남 공세 조치라기보다는 임금 현실화와 토지사용료 유예기간 단축 등을 위한 협상을 시작하자는 것. 정부 당국자는 “전체적으로 공단 운영과 관련해 남북 당국 간 협상을 시작하자는 내용”이라고 해석했다.
남북 간의 만남은 북측이 이날 오후 8시 반경 본접촉을 갖자고 우리 측에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김영탁 개성공단사업지원단장과 문무홍 개성공단관리위원장 등 남측 대표 7명은 즉시 버스를 타고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서남쪽으로 1.7km 떨어진 총국 건물로 향했다. 남측 대표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북측 대표단이 공단 운영에 대한 의견을 통보하며 통지문을 전달했다. 이에 김 단장도 구두로 입장을 전달하고 준비해 간 5개 항의 의견서를 건넸다.
○ 접촉 무산에 초조했던 오후
이날 오후 늦도록 공식 접촉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서울 종로구 삼청동 남북회담본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통일부 당국자들의 얼굴에는 초조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처음으로 열리는 남북 당국 간 접촉이었고 A 씨의 신변 문제가 걸린 중요한 만남이었다.
밤이 깊어지면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인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순간, 남측 대표단에서 예비접촉을 담당한 김기웅 개성공단사업지원단 지원총괄과장이 북측 연락관인 총국 관계자와 최종 예비접촉을 벌여 양측 간 견해차를 좁히고 ‘공식접촉 전격 실시’라는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소식이 서울로 타전됐다.
○ 남북의 지루한 샅바싸움
남북은 이날 하루 종일 지루한 샅바싸움을 벌였다. 김 과장은 “우리는 국민의 안전과 개성공단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 여기에 왔다”며 A 씨와의 면담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를 위해 협상 장소와 참석자 명단 등을 놓고 지루한 협상을 벌였다.
김 과장은 오전 9시 반 첫 예비접촉에서 “공식접촉을 공단관리위에서 갖자”고 요청했고 북측은 총국에서 하자고 맞섰다. 이견을 확인한 양측은 오전 10시경 다시 만났다. 남측은 “왜 총국 건물에서 접촉을 하자는 것인지 이유를 밝히라”고 북측에 요구하고 A 씨를 만나게 해주면 장소 문제는 양보할 수 있다고 제의했다. 또 이번 접촉에 나설 북측 당국자 명단을 통보할 것을 요구하면서 논의할 의제에 대해 사전 협의를 진행하자고 주장했다.
남측 대표단은 두 차례의 오전 예비접촉이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난 후 공단관리위 안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낮 12시 반과 오후 3시 반 다시 양측 연락관이 만났으나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양측은 이후에도 세 차례나 예비접촉을 더 가졌다.
○ 남측 대표단의 비장한 개성공단행
대표단은 이날 오전 남북회담본부에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마지막 전략회의를 열었다. 현 장관은 “우리 국민의 신변 안전과 같은 엄중한 사안을 다루게 되는 만큼 정부와 국민이 뒤에 있다는 것을 믿고 의연하고 당당하게 접촉에 임해 달라”며 “남북관계에 대한 긴 호흡과 안목을 가지고 상황에 맞게 유연하고 적절하게 대처하라”고 말했다.
오전 7시 15분 현 장관 등 통일부 간부들의 환송을 받으며 승용차 1대와 버스 1대로 남북회담본부를 떠나 방북 길에 오른 김 단장 등 남측 대표단의 얼굴은 가랑비가 내리는 이날 아침의 궂은 날씨처럼 굳어 있었다. 이들은 오전 8시 20분경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에 도착해 오전 8시 43분 출경장 안으로 들어갔다. 일행 중 문 개성공단관리위원장만 승용차 편으로 먼저 출발했고 나머지 대표단은 귀빈실에서 잠시 대기하다가 버스를 타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