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우여곡절 끝에 22분간 이뤄진 남북 정부 당국 간 접촉 이후 우리 정부의 대응은 의외로 차분했다. 당일 밤 청와대에서 긴급 안보 관련 장관회의가 열렸으나 서두르지 말고 북한의 제안을 면밀히 검토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기조는 22일에도 이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어제 밤늦게 접촉 결과가 나와 오늘부터 북한이 요구한 내용에 대한 검토 작업에 들어갔다”며 “남북간 협상인 만큼 들어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들어주는 대신 우리가 요구할 것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 및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토가 끝나면 북측에 접촉을 요청할 계획”이라며 “재접촉 요구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북측이 외견상 강공으로 나오긴 했지만 실제로는 남측에 대화의 신호를 보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평소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경색되면 북한은 남한하고 대화하려 할 것”이라고 말해왔는데 바로 그 시점이 온 것이라고 청와대 측은 분석했다. 북한이 당국 간 접촉에서 개성공단 특혜 전면 재검토를 들고 나온 것은 “오너(대통령)가 바뀌었으니 계약을 새로 맺자”는 주장일 뿐 개성공단 자체를 폐쇄하려는 의도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이에 정부는 ‘서두르지 않고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으며 최대한 실리를 챙긴다’는 전략적이고 실용적인 대응 기조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는 “첫 접촉에서 북한이 우리 정부에 몇 가지를 요구한 만큼 공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며 “서두르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찾을 수 있도록 대화를 지속시키는 데 최우선 순위를 둘 생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개성공단 사업과 관련한 북측의 재협상 요구는 현재로선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다. 북측이 대화의 신호를 보낸 만큼 우리도 대화를 해 나가겠지만 대화 의사가 있다는 게 ‘양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사실 정부가 현실적으로 고민하는 대목이다. 결국 억류된 현대아산 근로자 A 씨 문제를 풀고 지속적으로 남북대화의 끈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북측에 ‘당근’을 제시할 수밖에 없지만,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될 뿐만 아니라 지난 정부와 다른 게 뭐냐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일단 협상의 물꼬를 튼 뒤 비료지원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A 씨 문제를 풀고 나아가 추가적으로 실질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북핵 문제 등 남북관계 전반으로 대화의 틀을 확대해 간다는 복안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