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소속 박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위원장은 22일 개회 시간보다 30분 이른 오전 9시 반, 회의장 위원장석에 앉았다. 빼앗길 것에 대비해 의사봉도 2개를 준비했다. 곧이어 강기갑 의원 등 민주노동당 소속 의원 5명 전원과 민주당 천정배 최인기 유선호 조배숙 김상희 의원 등이 의장석을 둘러쌌다. 여차하면 위원장석 마이크와 의사봉을 빼앗을 태세였다. 이들은 외통위 소속이 아니었다. 이날 정세균, 박주선, 이미경 의원을 대신해 외통위에 보임(補任)된 김영록, 김우남, 최규성 의원도 가세했다.》
여야 고성 - 몸싸움 속 박진위원장 의결절차 실수
“이의 있습니까” 대신 “질의 있습니까” 잘못 물어
박 위원장은 오전 10시 회의를 시작하기 전 몇 차례 “의석을 정돈하고 비(非)외통위 소속 의원들은 의석 뒤 좌석에 앉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야당 의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날 18번째 마지막 안건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기 전까지 박 위원장은 서너 번 더 “질서를 유지해 달라. 비외통위 소속 의원들의 퇴장을 명령할 수 있다”고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17번째 안건 처리를 마친 박 위원장이 결심한 듯 “장내 정돈을 위해 보좌진과 방청인, 그리고 언론인은 퇴장하라”며 최후통첩을 한 뒤 “의사일정 18항…” 하며 비준동의안 처리를 시작했다. 여야 의원들 간에 “(의사봉에) 손대지 마”, “(처리) 하지 마” 등 고성이 오갔고, 몸싸움이 치열해졌다.
“질의 있습니까”라고 박 위원장이 묻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없습니다”라고 호응했고, 비준동의안은 통과됐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질의 있다”고 외쳤지만 허사였다. 그러나 사실은 “이의 있습니까”라고 물었어야 절차에 맞는 것이었다. 박 위원장과 한나라당은 뒤늦게 속기록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이날 오후 속개된 전체회의에서 비준동의안을 재의결했다. 유세 지원을 나간 의원들까지 불러 모아 겨우 의결정족수 15명을 채웠다. 야당은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밖에 없었다.
비준동의안은 6월 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은 이것이 1월 6일 원내대표 간의 ‘미국 새정부 출범 이후 빠른 시일 내에 협의 처리한다’는 합의와도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당도 이미 상임위를 통과한 이상 본회의 통과를 극력 저지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다만 국회법 63조 2항에 따른 전원위원회를 개최해 반대 의견을 모두 쏟아내는 ‘살풀이’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재계는 비준동의안이 외통위를 통과한 것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내며 본회의 통과도 조속히 이뤄지길 희망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공식 논평에서 “한미 FTA는 어려운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경제를 회복시키는 돌파구로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한다”며 “특히 수출 증가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대외 경쟁력 강화로 경제회복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박대식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본부장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때 한미 FTA의 발효는 어려움에 처한 우리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