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전 돈주면 탈난다” 朴이 속도조절

  • 입력 2009년 4월 24일 03시 02분


檢 “盧와 돈 전달시기 몇차례 논의한 정황”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사진)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가 성립하려면 검찰은 600만 달러가 오갔을 때에 노 전 대통령이 이를 알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검찰은 이미 박 회장 등의 진술과 정황증거를 통해 이 같은 ‘입증’이 상당 부분 진척됐다고 보고 있다.

특히 검찰은 2007년 말 박 회장이 500만 달러를 요구하는 노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 재임 중에 거액을 주면 서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퇴임 후까지 기다리는 게 어떠냐”라는 취지로 역제안했다는 박 회장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보다 오히려 박 회장이 돈 때문에 탈이 날 것을 우려해 ‘송금 시점의 연기’를 요청했다는 것. 그런 과정에서 양측 간에 여러 차례 돈 문제를 논의한 정황이 나타나 있다는 얘기다.

만약 박 회장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돈 전달 시기 문제를 놓고 양측 간에는 미묘한 기류가 흘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 씨가 지난해 1월 창업투자회사를 설립하고 난 뒤 2월 22일 오후가 돼서야 500만 달러 송금요청서를 홍콩 현지의 은행에 제출했다고 한다. 금요일인 이날 물리적으로 송금이 어려웠기 때문에 주말인 23, 24일을 지나 노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25일 이후에 돈이 가도록 했다는 것.

연 씨 등이 2007년 12월 베트남으로 박 회장을 찾아간 상황도 상세히 재구성돼 있다고 한다. 연 씨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노건호 씨, 그리고 이들의 친구 한 명 등 모두 3명이 박 회장을 만났고, 이들은 “500만 달러의 지분을 나눠 투자해 수익을 내겠다”며 투자설명을 했다. 이때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과 ‘얘기’가 끝난 상황이라 이들의 설명에는 관심이 없었고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는 것. 박 회장은 “내용도 모른 채 직원에게 ‘사업성을 검토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박 회장이 “500만 달러는 이미 노 전 대통령에게 주기로 돼 있었던 돈이었는데, 그 후 ‘애들’에게 보내라고 해서 돈을 보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5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 몫으로 정해져 있었고 2007년 12월쯤에는 노 전 대통령 측에서 돈을 받는 창구를 연 씨 쪽으로 지정했다는 정황도 있었다는 것.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만으로도 “지난해 3월 초, 중순쯤 500만 달러의 존재를 알았다”는 노 전 대통령의 해명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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