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에 골프장 허가” 미끼로 100만달러도 꿀꺽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사는 김모 씨(42·여)는 2007년 7월 잘 아는 언니에게서 북한산 수산물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면 돈벌이가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국 단둥(丹東)으로 갔다. 김 씨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던 이모 씨(41)를 통해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 단둥지부 김모 부대표를 소개받았다.
김 부대표는 “북한산 소라껍데기가 단가도 싸고 질도 좋기로 유명하다”며 김 씨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김 씨는 북한 소라껍데기의 국내 판매 독점권을 받기로 하고 계약금으로 15만 달러를 김 부대표에게 건넸다. 게다가 독점권을 준 리베이트로 1만 달러까지 줬다. 김 씨는 소라껍데기뿐만 아니라 다른 수산물이나 모래 등 대북사업의 독점 계약권을 주겠다는 말에 속아 보증금 4만 달러를 내는 등 그간 총 4억여 원을 썼다. 하지만 그 후 2년 가까이 지나도록 소라껍데기 등은 구경도 하지 못했다. 계약 해지를 요구하면서 돈을 돌려달라고 하자 김 부대표는 계약금의 10%인 1만5000달러만 돌려주었을 뿐이다.
김 씨는 보증금이라도 되돌려 받기 위해 2년 동안 10번 이상 중국에 갔지만 김 부대표는 그때마다 평양에 들어간다며 만남을 피했다. 어렵게 연락이 되면 “중개업자 명의로 계약을 했으니 나는 상관이 없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정부 당국자들도 이에 무관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북한에 투자하라고 했느냐’는 식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을 외면하기 때문에 이들은 하소연할 곳조차 없다. 김 씨는 청와대 신문고에도 민원을 내봤지만 개성공단의 연락사무소 연락처를 주면서 통화해보라고 했을 뿐이다.
북한의 대남(對南)경제협력 창구인 민경련과 대북(對北)투자사업 계약을 체결했다가 돈만 떼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민경련 일부 간부들이 국내 독점 사업권을 주겠다는 식으로 현혹한 뒤 돈만 받고는 북한으로 들어가 버리거나, 북한 당국 승인이 나지 않았다며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뤄 투자자들을 울리고 있는 것.
5일 개성공단 입주를 지원하는 남북포럼에 따르면 2007년 이후 개성 지역에 골프장을 건설할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말에 속아 민경련 간부에게 100만 달러를 줬다가 돈만 날린 사례만 3건. 지난해 지방의 한 건설회사는 북한 모래 채취 독점 계약권을 준다는 말에 속아 50만 달러를 날리기도 했다.
한국 투자자들은 민경련 간부의 신원을 확인한 뒤 민경련과 계약을 하지만 막상 문제가 생겨 민경련을 찾아가면 “담당 간부가 당국의 승인을 받지 않고 개인적으로 체결한 계약이어서 민경련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식으로 발뺌한다는 것.
지난해 북한 정부는 비리 의혹이 많은 민경련 대표들을 소환 조사하면서 단둥과 베이징(北京)의 민경련 대표를 물러나게 하고 젊은 경협 간부들을 새 대표들로 임명했다. 하지만 민경련 간부의 비리를 북한 당국이 인지하고 이 같은 조치를 취하더라도 투자자들이 돈을 되돌려 받을 방법은 없다.
남북포럼 김규철 대표는 “민경련이 유일한 대남 경협 독점 창구이다 보니 크고 작은 비리가 많이 생긴다”며 “합의된 4대 경협합의서가 이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를 거쳤더라도 북한 투자에 대한 보장 장치와 분쟁 해결 절차가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영환 팀장은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남북경협 사업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며 “이런 피해자들에 대해 북한 정부가 책임을 지도록 정부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
남북 경협을 실질적으로 담당하는 북측 최고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 산하에 민경련이 있었으나 지난달 북한 헌법 개정에 따른 조직개편으로 민경협이 폐지되면서 대남 경협을 실무적으로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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