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전대통령은 "북핵 문제가 중대한 난관에 처해 있고 6자회담은 반신불수 상태에 있다"면서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해 한반도 평화 실현에 주도적 역할울 해달라"고 말했다.
김 전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가져서는 안된다"며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한국 일본도 핵을 갖겠다는 주장을 하게 되고 동북아는 핵의 지뢰밭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인내심과 설득력으로 북미 양국과 다른 참가국을 접촉한다면 성공의 길이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전 대통령의 강연이 끝난 후 가진 질의 응답에서 한 베이징대 학생은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이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펴는 동안 북한은 뒤에서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비난이 있는데 이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펴기 전부터 북한의 핵문제가 국제사회의 현안이 돼 햇볕정책과 북한 핵개발과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제네바 협정에 따라 북한은 핵을 포기하고 경수로를 제공받으며, 미국과는 점차적으로 수교를 맺기로 되어 있었는데 조지 W 부시 정권이 들어선 후 약속을 지키지 않은데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모는 것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다만 "북한 비핵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로가 불신하고 암수(속임수)를 쓰려다 보니 서로간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부시 정부 후반에 6자 회담을 시작한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고 6자 회담을 통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한다고 밝힌 만큼 문제 해결의 희망을 본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베이징대에 유학중인 한국학생들에게는 "중국 학생들과의 폭넓은 인적 교류를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를 다짐하고 토론하는 것이 매우 값진 경험이자 이 지역 평화의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강연에는 츠후이성(遲惠生) 베이징대 부총장, 자칭궈(賈慶國)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 차이진뱌오(蔡金彪) 중국인민외교학회 부회장과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3남 홍걸 씨,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 박지원 민주당 의원, 노웅래 전 의원 그리고 베이징대의 교수와 학생 150여명이 참석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김대중 前 대통령 중국 베이징대학 강연 전문
강연 시각 : 2009년 5월 6일 오전 10시(현지 시간)
강연 장소 : 중국 베이징대 정다(正大)교류센터 훙야팅(弘雅廳)
제목 : '북핵 해결과 동북아의 미래, 중국에 기대한다'
"존경하는 총장과, 교수, 학생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여러분!
오늘 제가 세계적인 명문대학인 북경대학에서 또 다시 강연을 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중국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올해 건국 60주년을 맞이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눈부신 발전을 이룩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경하해 마지않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조금 심각한 주제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북한 핵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이며, 동북아의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리고 중국에 대한 우리 한국인들의 기대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먼저 북한 핵문제 해결 방안에 대해서 논의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강조할 것은 우리는 북한의 모든 권리를 존중한다고 하더라도 핵무기를 만드는 것만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으며 반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핵무기 없는 세계'를 실현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어 전 세계 평화애호 인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고 있는 이때에 새로이 핵보유국가가 등장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북한이 만일 핵을 갖게 된다면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핵을 갖겠다는 주장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이미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동북아시아는 핵의 지뢰밭이 될 것이며, 우리의 안전은 위협받게 되고, 우리가 갈망하는 평화는 절망적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북한은 이미 1994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 당시 북미 제네바회담에서 핵 포기를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 대가로 미국은 경수로를 제공하고 국교도 정상화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2000년 6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회담 당시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 포기를 강력히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을 강조했습니다.
저는 이 회담 후 서울로 돌아와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대화 경위를 설명하고 북미 대화를 추진하도록 권고했습니다. 그 이후 북한의 조명록 차수가 미국을 방문해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고, 미국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포기 등 북미간의 미사일협상도 큰 진전을 이룩했습니다.
당시 북미관계는 급진전되어 클린턴 대통령이 방북하여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미사일 문제 등을 마무리 지으면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제네바합의에 의한 북한 핵 포기 합의 준수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미국의 정권교체에 의해 부시 대통령이 취임했습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클린턴 대통령이 합의해 놓은 것을 파기하기 시작했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정하고 적대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중유 공급을 중지하고 경수로 사업을 중단시켰습니다. 외교관계 수립도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부시 행정부의 적대정책에 맞서 북한은 핵개발을 재개했습니다.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감시요원을 추방했습니다. 부시 정권 8년 중 6년은 이와 같은 갈등과 대립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임기 마지막 2년 동안 종래의 정책을 바꿔 중국의 협력을 받아 구성한 6자회담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2005년 9월 합의된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합의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고,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 관련 당사국이 협의하여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한다. 북한에 대해서 식량과 연료를 지원한다. 모든 것은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진행한다."
이는 6자회담 당사국들도 모두 지지하고 합의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장국인 중국이 크게 기여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9.19 공동성명은 훌륭한 합의였으나 미국 내의 강경세력과 일부 6자회담 참가국들의 비협조로 지지부진한 가운데 오바마 정권이 등장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 후에 자기의 대북정책은 부시의 방식이 아니라 클린턴이 한 것을 참고로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인 힐러리 클린턴 여사를 국무장관에 임명했습니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지난 2월 동아시아 순방 전에 <아시아 소사이어티>에서 행한 연설에서 '북한이 만일 진정으로 핵을 포기할 용의를 보여준다면 우리는 북한과 국교를 맺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반도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논의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북한도 9.19 공동성명을 지지한다며 그 실천을 촉구한 바 있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지금 북핵문제는 중대한 난관에 처해있고, 6자회담은 반신불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 상황을 검토해 보면 북핵문제는 9.19 성명에서 합의된 내용대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합니다.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북한이나 미국이 모두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이미 합의된 원칙에 따라서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북미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양국이 모두 큰 부담을 안게 됩니다.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도 크게 낙담할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핵문제 해결에 대한 원칙도 합의되었고 이해도 일치한 이상 이 문제는 해결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미사일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지금이야말로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다시 한번 종래에 해온 바와 같이 인내심과 지혜로운 설득력을 가지고 북미 양국과 다른 참가국을 접촉한다면 성공의 길이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우리 한국민은 중국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로 중국은 북한, 미국 등을 설득하여 이미 합의된 내용에 따라 북한 핵문제를 타결시켜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일은 중국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가 모두 인정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금 남북관계가 상당히 경색되어 있습니다. 대화는 끊기고 여러 가지 협력사업도 차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군사적 긴장의 조짐조차 보입니다. 한국 국민은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매우 바라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도 한발 앞으로 나서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때에 중국이 남북 양자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여 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과 제가 이룩했던 화해협력의 상황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을 부탁합니다.
셋째, 중국은 북한 핵문제가 성공적으로 해결되는데 따라 이미 6자회담에서 합의된 바 있는「동북아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지역협력체제」구성에 앞장서 주셔야겠습니다. 동북아 안보 협력체제야말로 한반도는 물론 관련 6자 당사국의 안전과 이익에도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 국민은 중국의 놀라운 발전과 세계적 영향력 확대에 큰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한중관계를 더욱 긴밀히 해서 상호 이익을 증진시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외교, 경제, 문화, 관광 등 모든 분야에서 더 한층 교류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바라며, 중국 측의 적극적인 협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양국은 천년의 우의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후손인 우리들이 더 한층 이를 발전시켜 나가야겠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중국은 1820년대 세계 최대의 부강한 나라였습니다. 중국이 21세기에 있어서 가장 강성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것은 많은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지금은 세계화의 시대입니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와 달리 부강한 나라는 그만큼 인류의 평화와 발전, 그리고 정의의 실현에도 큰 책임이 있습니다.
21세기 안에 동아시아 공동체가 실현되고 나아가 세계연합 등도 내다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 출발이 6자회담의 성공에 의한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의 안보협력체제의 구현입니다. 중국과 미국을 포함한 6자의 모든 나라가 굳건히 협력하여 평화와 우호와 공동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이룩하기 위하여 역량을 총집중합시다. 그리고 더욱 앞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중국에의 기대는 매우 큽니다.
감사합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