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를 위해 사지로 뛰어드는 북한 상선들

  • 입력 2009년 5월 8일 18시 41분


한국 해군에게 4일 구조된 북한 상선 '다박솔호', 2007년 10월 선원들이 해적을 제압해 화제가 됐던 '대홍단호', 2002년 12월 미사일을 싣고 가다 스페인 해군에게 나포됐던 '서산호'. 세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소말리아 인근 해역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북한 상선들은 왜 이 지역에 자주 나타나는 것일까.

북한엔 상선이 많지 않다. 외화로 상선을 사올 형편이 못된다. 대신 자체 건조하지만 잘 나가던 1970년대에도 1년에 중소형 상선 몇 척 건조하는데 그쳤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엔 경제난으로 건조는 고사하고 수리능력도 유지하기 힘든 형편이다.

6399t급 다박솔호도 1975년 함남 신포 봉대보일러공장에서 건조됐다. 2001년까지 '성천강', 2004년까지 '평양813', 이후 지금의 다박솔로 세 번이나 이름을 바꾸면서 무려 34년간 운용 중이다. 외국 같으면 이미 폐기됐을 고물이다. 북한의 대다수 선박들이 비슷하다.

이런 낡은 상선들이 멀리 소말리아 해역까지 진출한 이유는 이곳이 해적출몰지역이기 때문이다. 다른 선박들이 운항을 기피해 운임이 껑충 뛴 이 지역에서 북한 상선들은 1년 이상 이곳저곳 오가며 각종 화물을 날라주고 달러를 챙긴다. 노동당의 귀중한 달러 획득원이다. 다박솔호도 이집트에서 인도로 철강재를 싣고 가던 길이었다. 어쩌다 귀국했다 나갈 때는 중동 지역에 미사일 등을 싣고 나가는 특수 임무를 받기도 한다.

상선들이 낡아 사고 위험도 높지만 외국 보험에 들어있기 때문에 침몰돼도 금전적 손해는 없다. 그렇잖아도 북한은 보험금을 노려 태풍 때 낡은 상선을 고의로 침몰시킨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배가 낡은데다 위험도 많아 북한 선원들은 사실상 생명을 내놓고 배를 타는 셈이다. 또 외국에 나오면 선장, 사무장, 보위지도원 등 극소수만 항에 내릴 수 있고 나머지 선원들은 몇 년이고 배에서 내릴 수 없다. 월급은 1990년대 갑판장 급이 50달러 정도였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외부 시각에선 불쌍한 게 북한 무역선원이지만 북한에서는 선망의 대상이다. 외국을 구경할 수 있는데다 월급을 달러로 받고 배에선 잘 먹는다. 특히 사무장을 통해 외국 물품을 구입해 북한에 돌아가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다. 이렇다보니 무역선원이 되기 위해 수천 달러의 뇌물이 오간다.

깜짝 부수입으로 기쁜 날도 있다. 한 전직 북한 무역선원의 회고다. "아프리카 한 나라에 옥수수를 싣고 간 적 있다. 다 부리고 나니 화물칸에 흘린 옥수수가 수북했다. 통상 항구에서는 청소부들이 선박을 청소해주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우리는 청소 제안을 거부한 뒤 한밤중에 모두 일어나 동틀 때까지 화물칸을 청소했다. 사정을 모르는 현지인들은 다음날 아침 깜짝 놀라 '북한 사람들은 참 부지런하다'고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공평하게 나눈 옥수수 250㎏을 다음해 귀국할 때 갖고 왔더니 아내가 너무 좋아했다."

북한은 1970년대 개발도상국에 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1990년대 초반까진 아프리카에서 선원들의 김일성 배지를 알아보고 반기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요즘엔 어딜 가나 냉대받기 십상이라고 한다. 대홍단호 사건 때엔 북한 상선들의 무기보유 여부가 관심을 끌었다. 최근 들어 자동소총 몇 정씩 몰래 숨겨갖고 있다는 증언도 있지만 확인되진 않고 있다. 다만 상선 보위지도원은 옛날부터 권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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