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부동 朴… 10시간반 날아간 설득도 허사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안 풀리네…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한나라당 상임고문단 오찬 간담회에서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재·보선 결과로 나타난 민심의 목소리를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희태 대표가 상임고문단의 얘기를 들으며 이마를 만지고 있다. 김경제 기자
안 풀리네…
8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한나라당 상임고문단 오찬 간담회에서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재·보선 결과로 나타난 민심의 목소리를 가볍게 듣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희태 대표가 상임고문단의 얘기를 들으며 이마를 만지고 있다. 김경제 기자
친이 “일이 한번에 되겠나”… 친박 “결론은 뻔하다”

《한나라당 김효재 대표비서실장이 미국으로 급파됐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현지 시간으로 7일 오후 8시 반경이었다. 방미 공식 일정을 마친 뒤 저녁 식사를 하던 박근혜 전 대표 일행들은 “미국에까지 와서 부담을 주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한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정치 스타일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원칙에 대해 밝힌 것인데 결론은 뻔하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은 “결국 주류 쪽에서 ‘우리가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박 전 대표가 받아주지 않는다’는 명분을 쌓기 위한 수순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

김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9시 50분경 박 전 대표가 머물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웨스틴세인트프랜시스 호텔로 찾아왔다. 그는 “오해가 있다면 풀어드리기 위해 왔다”며 먼저 말을 꺼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 카드’에 여전히 단호했다. 박 전 대표는 “계파 문제는 본질이 아니라 당이 사는 게 본질이다. 이정현 의원을 통해 전달한 대로 해 달라”고 말했다. 면담에서는 김 의원이 경선에 출마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고 한다. 박 전 대표의 뜻이 완강하자 김 비서실장은 “(한국에) 들어오면 박희태 대표와 만나겠느냐”며 회동을 제안했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그때 가서 (상황을) 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결국 김 비서실장은 10시간 반의 비행 끝에 고작 20분 만에 면담을 끝낸 채 성과 없이 호텔을 떠나야 했다.

박 전 대표는 면담에서 전날 자신이 내놓은 발언을 놓고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한 게 아니냐”는 일각의 관측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원내대표 경선 참여를 일찌감치 선언한 주자들을 주저앉히고 다른 사람을 내세우는 방식에 대한 형식적인 문제를 지적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박 전 대표는 당이 지금과 같은 위기 상황에서 친박 인사를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는 것 자체가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고 측근들은 설명했다. 당 지도부가 국정 운영과 당 운영을 쇄신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을 보일 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 측은 이날 면담이 무산될 것을 걱정해 김 비서실장이 비행기에 오른 뒤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만나러 가겠다”고 박 전 대표 측에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설득작업이 무위로 돌아간 뒤 김 비서실장은 “사실상 일이 한 번에 되느냐. 이제 시작이다. 모든 일이…”라며 여운을 남겼다. 김 비서실장은 귀국 일정도 9일(현지 시간)로 미룬 상태라 동행한 친박 의원들을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박 전 대표와 동행한 친박 의원들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다. 재·보궐선거 패배의 책임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박 대표와 당내 화합을 두고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격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앙금이 있는 대상도, 풀어야 할 대상도 결국 이명박 대통령인데 박 대표와 만난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반문했다.

샌프란시스코=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안된다고만 하니…” 고민하는 친이
소장파 등 지지얻어
朴측 우회압박 거론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에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거듭 반대 의사를 밝힘에 따라 박희태 대표와 친이(친이명박) 진영이 대안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다. 박 대표는 우선 박 전 대표가 미국에서 돌아오는 대로 만나 이번 제안의 진정성을 설명하고 수용해 줄 것을 요청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강경하게 반대 의견을 나타낸 박 전 대표가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수도권의 한 친이계 재선 의원은 “박 전 대표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확실한 카드를 내놓아야 하는데 이는 차기 대권과 직결된 사안일 수 있어 청와대와 당 지도부, 친이계 내부의 소계파 간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원내대표론’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면서 우회적으로 친박 진영을 압박하는 것도 박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다. 우선 중립지대에 있는 소장 개혁파 의원들로부터 지지를 이끌어 내고 친박 진영 외곽의 협조를 구할 수 있다면 박 전 대표와 협상하면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민본21’의 공동간사를 맡고 있는 김성식 의원은 “김무성 카드를 이대로 폐기한다면 친이 친박 모두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김태환 의원 등 일부 친박 의원은 김무성 의원이 경선으로라도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이 널리 퍼진다면 박 전 대표도 무작정 이번 제안을 거부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더욱이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 지나치게 경직된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여론전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8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상임고문회의에서도 당 원로들은 계파 갈등을 걱정하며 화합을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박 전 대표를 설득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친이 친박 간 갈등의 정점에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에 근원적인 불신이 깔려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이 나서지 않고서는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친이 직계인 권택기 의원은 “해법을 찾기 어렵다면 8월 조기 전당대회를 여는 것을 전제로 쇄신특별위원회가 당의 혁신과 통합방안을 만들고 그에 따라 당헌 당규를 고친 뒤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조금 더 지켜보겠지만 김무성 추대론이 끝내 불발되면 경선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 만남은 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당직 나섰다가는…” 몸사리는 친박
대대적 개편 앞두고
박근혜 발언으로 부담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가 7일(현지 시간)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론’에 반대 방침을 거듭 천명하자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곤혹스러워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김무성 카드를 단호하게 거부하면서 당직 진출을 희망하는 일부 친박계 의원의 마음이 심란해지고 있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21일 치러지는 원내대표 경선과 공석인 사무총장 선임 등 대대적인 당직 개편을 앞두고 있다.

탕평(蕩平) 인사를 통한 이명박 대통령과 박 전 대표와의 화합은 많은 친박계 의원이 그동안 주장했던 것이다. 특히 4·29 재·보궐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당내 분열을 꼽으면서 당 화합 차원에서 친박계 의원들을 중용해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의원이 많았다. 또 원내대표 경선을 준비하고 있는 안상수 정의화 의원 등 친이(친이명박)계 의원들은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의장 후보로 나서 달라며 친박계 의원들에게 ‘러브 콜’을 보낸 터였다. 안 의원은 친박계 핵심 재선인 최경환 의원과 강재섭 전 대표 계열이지만 범(汎)친박으로 불리는 김성조 의원을 러닝메이트로 고려하다가 최근 김 의원과 짝을 맺기로 마음을 정하고 출마 선언을 준비해왔다. 정 의원의 경우 박 전 대표의 핵심 측근으로 불리는 진영 의원과 러닝메이트로 나서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했지만 진 의원이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희태 대표를 비롯한 여권 수뇌부도 홍보기획본부장 전략기획본부장 여의도연구소장 자리에 친박계 의원들을 후보로 검토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등 주요 당직에 친박계를 파격적으로 등용할 생각”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박 전 대표의 추대론 반대 발언이 나오면서 당직을 염두에 두고 있던 친박계 의원들이 내심 속을 태우게 됐다. 주요 당직을 맡는 것 자체가 박 전 대표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하고 싶은 당직이 있었지만 박 전 대표의 발언으로 나서기가 부담스러워졌다”며 “일단은 원내대표 논의가 어떻게 정리되는지 지켜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친박계 의원은 “지도부 쪽에서 진정성을 담지 않은 채 화해 제스처를 보내려다가 이렇게 된 것 아니냐”면서 “이번 파동으로 친이 친박 간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권 수뇌부는 이 같은 친박계의 ‘몸 사리기’ 때문에 박 대표가 추진해 온 탕평인사 시도가 물거품이 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친박 진영에서 주요 당직을 맡으려고 하지 않을 경우 친이-친박 간 갈등을 봉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일단 김무성 원내대표 추대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으면서 친박 진영을 설득하는 데 적극 나서기로 했다. 박 대표는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 간담회에서 “당 화합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지상 과제”라며 “당 단합 행진은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친박 진영이 당직을 고사할 경우 중립 성향 의원들이 주요 당직에 기용될 가능성이 있다. 당 일각에서는 개혁 성향의 초선의원 모임인 ‘민본21’ 소속 의원을 중용하는 파격 인사를 점치기도 한다.

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