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시간이면 올 것을… 93년이나 걸려 죄송”

  • 입력 2009년 5월 18일 02시 58분


한승수 국무총리(가운데)가 16일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열린 ‘제6회 전국 한센 가족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환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고흥=연합뉴스
한승수 국무총리(가운데)가 16일 국립소록도병원에서 열린 ‘제6회 전국 한센 가족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환자들을 격려하고 있다. 고흥=연합뉴스
소록도 찾은 한승수 총리
한센인 차별 거듭 사과
현직 총리로는 첫 방문

“대한민국 총리가 이곳에서 여러분을 만나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16일 오후 올해 개원 93주년을 맞은 한센인 전문 치료기관인 전남 고흥군 국립소록도병원. 한승수 국무총리가 떨리는 목소리로 ‘제6회 전국 한센 가족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시작하자 행사장은 숙연해졌다. 한 총리가 “그동안 사회적 냉대와 차별, 편견 속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온 한센인과 가족 여러분에게 정부를 대표해 심심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하자 6000여 명의 참석자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한 총리는 이날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소록도를 찾았다. 4월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센인 차별에 대해 공식 사과했던 한 총리가 이곳을 직접 찾아 사과의 뜻을 거듭 밝힌 것이다. 그는 “어려움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온 여러분에게 깊은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으며 항상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여러분이 과거의 아픔을 딛고 소외에서 소통으로, 좌절에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100년 가까이 수많은 한센인이 겪어야 했던 한과 설움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라며 “한센인들이 겪은 차별과 냉대에 종지부를 찍는 데 더 많은 관심을 (이곳에) 기울여주기 바란다”고 국민에게 호소했다.

이날 총리의 첫 소록도 행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종일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 때문에 한 총리와 부인 홍소자 여사는 비행기 편을 포기하고 인근 벌교역까지 기차로 이동해 승용차로 갈아타고 소록도에 도착했다. 소록도까지 왕복 11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한 총리는 “이 비는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하늘이 내린 축복의 선물 같다”며 활짝 웃었다. 한 총리를 맞은 한센인 출신 임두성 국회의원(한나라당)도 “총리가 소록도를 방문하니 하늘도 감동해서인지 비가 내리고 있다. 그동안 소록도에서 눈물을 흘리며 세상의 벽을 넘지 못하고 안치된 1만2000여 명의 한센 선배님들의 설움이 비가 돼 내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한센인 복지 증진에 기여한 유공자 5명을 표창한 뒤 병실을 다니며 환자들에게 “총리가 왔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면서 “빨리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위로했다. 또 박형철 원장과 병원 관계자들을 격려하고 간호사 증원 등에 관한 병원 측의 건의사항을 들었다. 한 총리는 임 의원이 내년 4월 한국에서 열릴 ‘세계 한센인 인권포럼’의 명예 대회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하자 이를 수락하고 “정부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돕겠다”고 약속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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