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중도하차, 피살, 구속 그리고 자살

  • 입력 2009년 5월 24일 02시 54분


측근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진 박정희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린 1979년 11월 3일 육사생도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따르고 있다.
측근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진 박정희 전 대통령 영결식이 열린 1979년 11월 3일 육사생도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따르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12·12 및 5·18 사건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12·12 및 5·18 사건 1심 선고공판이 열린 1996년 8월 26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 비운의 한국 대통령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들의 수난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또 한번 가슴 아픈 기록을 더하게 됐다. 재임 때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지만 결말은 순탄치 못한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노 전 대통령까지 전직 대통령은 모두 9명이다. 이 전 대통령이 하야한 뒤 망명길에 오르면서 고난이 시작됐다. 그는 초대 대통령으로서 국가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장기 집권을 향한 권력욕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큰 저항을 받았다. 1960년 3·15부정선거는 4·19혁명으로 이어졌다. 이 전 대통령은 결국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 직을 사임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하와이로 떠나 이국땅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쳤다.

내각책임제 체제에서 대통령 직에 오른 윤보선 전 대통령은 5·16군사정변으로 중도 하차했다. 그는 반(反)유신 운동 등을 이유로 퇴임 후 3차례나 법정에 서야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군사정변으로 권좌에 올라 1972년 ‘10월유신’으로 종신 집권 체제를 구축하려고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심복이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총탄에 쓰러져 18년의 장기집권을 마감했다.

박 전 대통령 시해 이후 과도기를 이끌었던 최규하 전 대통령은 최단 기간 대통령 직을 수행했다. 1980년 신군부 집권으로 8개월 만에 하야한 뒤 자택에서 외로이 지내야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부정축재로 퇴임 후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육군사관학교를 다닐 때부터 친구 사이이던 두 사람은 1980년 5·18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하고 차례로 대통령 직에 올랐다. 두 사람은 김영삼 정부 때 5·18사건과 관련한 군사반란 혐의로 각각 사형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2년가량 복역한 뒤 사면조치를 받고 풀려났다.

민주화 시대를 연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도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두 대통령의 아들은 각각 한보비리 사건과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는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결국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 때문에 본인과 가족이 검찰 조사를 받는 등 ‘선배’들이 겪은 수난과 비운을 피하지 못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