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40분 “사람들 지나가네” 경호관 시선 돌린후 투신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5월 24일 02시 54분



덕수궁 앞 분향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져 밤늦게까지 2000여 명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김미옥  기자
덕수궁 앞 분향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23일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 분향소가 차려져 밤늦게까지 2000여 명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김미옥 기자
오전 5시21분 “삶과 죽음이 한 조각” 컴퓨터에 유서 작성
오전 5시45분 사저 나서 경호관 1명과 함께 봉화산 등산
오전 6시40분 투신 직전 경호관에 “담배 있느냐” 물어
오전 8시13분 김해 세영병원 거쳐 양산부산대병원 도착
오전 11시 병원-문재인 前실장 “9시 30분 서거” 발표
오후 6시30분 봉하마을에 盧 전대통령 시신운구차량 도착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 같은 짧은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23일 새벽 유서를 컴퓨터에 남긴 뒤 봉화산 ‘부엉이 바위’ 절벽으로 가 투신하기까지의 과정과 병원 이송, 자살 배경 등을 되짚어봤다.》



○사저 뒷산에서 투신
경찰 발표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등산을 떠나기에 앞서 사저 내 서재의 컴퓨터에 유서를 써 넣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유서에서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털어놨다. 이어 가족을 의식한 듯 “너무 슬퍼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원망도 하지 마라. 운명이다”라고 적었다. 또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느냐”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오전 5시 21분 유서 작성을 마친 뒤 오전 5시 45분경 가벼운 옷차림으로 사저를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이 등산을 한다고 인터폰으로 연락을 하자 경호관 한 명이 뒤를 따랐다. 그는 지난달 30일 검찰 소환 조사를 위해 서울을 다녀온 이후 외부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언론의 취재 경쟁으로 인해 사저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등 사실상 ‘연금 상태’에 있어야 하는 심정을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리기도 했다.
봉화산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올라가 인근 화포천과 멀리 낙동강 줄기를 바라보던 곳이다. 집을 나온 노 전 대통령은 사저에서 200m 떨어진 ‘부엉이 바위’에 도착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 앉아 20여 분 동안 동행한 경호관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노 전 대통령은 “담배 있느냐”고 물었다. 경호관이 “가져올까요” 하자 “가지러 갈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이 지나가네”라고 말했고, 경호관이 바위 아래로 시선을 돌린 사이 노 전 대통령은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는 것. 이때가 오전 6시 40분으로 경호관이 저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회생 노력도 허사
경호관은 투신한 노 전 대통령을 업고 내려와 대기시킨 경호차량으로 7km가량 떨어진 김해시 진영읍 세영병원으로 긴급 후송했다. 오전 7시를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바위에 부딪히며 머리를 심하게 다친 노 전 대통령은 의료진의 응급처치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도착 당시 노 전 대통령은 푸른색 바지에 가벼운 복장이었고 한쪽 발에만 등산화가 신겨져 있었다. 등산화 한 짝과 윗옷은 현장에서 발견됐다. 세영병원 손창배 내과과장은 “노 전 대통령이 의식불명 상태에서 도착했고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고 말했다. 20여 분 동안 머리에 탄력붕대를 감으며 심폐소생술을 했다. 별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외과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 1명이 동승한 병원 구급차는 양산부산대병원으로 내달렸다.
양산부산대병원은 2월 말 노 전 대통령 부부가 건강검진을 받았고 가끔 외래 진료를 했던 곳. 오전 8시 13분 양산부산대병원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을 의료진이 심폐소생술 등을 동원해 회생을 시도했으나 허사였다. 의료진은 오전 8시 반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양산부산대병원장은 오전 11시 경남 양산부산대병원에서 “노 전 대통령이 오전 9시 반 서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해=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