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미치는 영향 없을지 촉각”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금융시장의 투자심리가 일시적으로 위축될 수는 있지만 한국 경제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을 가능성은 적다는 것이 정부와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 심화되면 일부 지표의 호조로 가까스로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가 다시 주저앉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제부처들은 이에 따라 23일 긴급회의를 열거나 비상 대기하면서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미칠 파장 등을 점검했다.
기획재정부의 고위 당국자는 23일 “외환시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며 “지금으로선 국가 신용등급이나 환율 등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기본적으로는 정치 문제이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 서거일이) 토요일이라 국내 외환시장과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없지만 외신 동향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들의 이런 시각은 경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치, 외교, 안보 사건이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을 준 사례가 드물었다는 데 근거를 두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5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다음 날 코스피는 오히려 장중 1,300 선을 돌파하며 상승했고 원-달러 환율은 급락(원화가치 상승)하는 등 시장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움직였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내성(耐性)이 강해졌다는 시각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예기치 않은 ‘후(後)폭풍’이 경제 교란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에도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이 증폭되고 여야의 대립구도가 심화되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추진해 온 기업 구조조정, 비정규직법 개정 등의 추동력이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를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각종 경제 활성화 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해야 한다는 전문가도 많았다.
황승진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단기적인 소비심리 위축 외에는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겠지만 향후 중장기적으로 불법 시위 등과 같은 혼란스러운 사태가 발생하면 문제가 달라질 수 있다”며 “국제적 신인도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초당적으로 대처해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소 간부는 “정치 사회적 불안이 커지게 되면 경제심리 호전 속도가 늦춰질 수 있다”며 “정부가 포용 정책을 펴면서 사회 화합과 안정 분위기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둬야 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증시 일각에서는 최근 한국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는 외국인의 투자심리가 다소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한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사회가 이념대립 구도로 치닫게 되면 한국 증시를 바라보는 외국인 투자가들의 시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이들의 매수 기조 자체가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충격이라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긴 쉽지 않다”며 “이번 불행이 사회불안 요인이 돼 투자심리에 악영향을 주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