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공병호]MB를 위한 고언

  • 입력 2009년 5월 26일 02시 56분


죽창이 예사롭게 사용된 대전 시위 사건을 보는 사람의 마음은 착잡하다. 이어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우리 사회에 여전히 과격 폭력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유감을 표했다. 시위가 있고 나면 유감이다 혹은 안타깝다는 표현에서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압도적인 표차로 이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관찰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일을 해결하는 사람이 돼 달라고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 1년 3개월 동안 정부는 불법 시위가 있을 때마다 법과 원칙에 따른 엄정 대처, 불법 행위자 현장 검거라는 표현을 남발했지만 국회 폭력, 촛불 시위, 용산 참사, 하이서울페스티벌 개막식 점령에서 보듯이 단 한 번도 원칙을 단호하게 실천에 옮긴 적은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는 이 대통령 이하 장관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다. 집권 이후에 제대로 한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한참 고민해도 머리에 떠오르는 점이 별로 없다. 대통령은 시대가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무너져 내린 원칙을 복원하여 반듯한 대한민국을 세워달라는 염원이 압도적인 지지를 몰아주었다. 내부에서 원인을 찾지 않고 누구 탓이오를 연발하는 한, 앞으로의 선거에서 패배를 피할 수 없다. 그런데 지지층의 실망감이 확연해지는 모습을 집권세력은 제대로 아는지 궁금하다.

‘원칙과 신념’ 부재에 실망

이제 대통령은 모두 다섯 가지 기준으로 자신을 들여다봐야 한다. 우선은 매력과 카리스마이다. 두 가지 모두 타고나는 부분이 많다. 이런 점에서 섭섭한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이 대통령과는 거리가 있다. TV에 등장하는 이 대통령에게서 끌림이라는 감정을 경험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또한 카리스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말씀을 하더라도 무게가 실리지 않는 실정이다. 말수를 줄이고 전문가의 도움으로 어떻게 하면 내가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라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영자는 지시나 통제를 중요한 수단으로 삼을 수 있고 동시에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완전히 다른 상황에서 리더십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사기업 세계에서 큰 성과를 거두는 데 성공한 지도자라고 해서 공적 영역에서 성과를 내는 일이 반드시 보장되지 않는다. 다른 상황에서 그 상황이 요구하는 특성을 재빨리 파악해서 이것에 맞는 리더의 변신이 요구된다는 말이다. 대전 죽창 사건이 표면화되었을 때 이 대통령은 금융기관이 관치 성격이 강하니 금융회사라고 고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개진했다는 내용이 함께 나왔다. 대전 시내가 시위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 금융회사라는 지엽적인 부분에 대한 지시가 꼭 필요한 상황이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국가를 이끄는 일은 화합이 중요하지만 자신이 지지층과 함께하는 정치적 신념이 반듯하게 서 있어야 한다. 회사 경영이야 원칙보다는 이것저것 실용적인 아이디어의 조합으로 이뤄질 수 있다. 국가경영의 나침반은 정치적 신념이다. 이를 똑바로 세우고 합당한 정책을 중심으로 사안에 따라서 실용성을 가미해야 한다. 정치적 신념은 확고한 개인적 신념의 모습에 토대를 둔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은 어떤 신념을 갖고 있는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실용이나 비즈니스 하기 좋은 나라라는 점은 수단일 수 있지만 정치적 신념이 될 수 없다. 이번 해외 순방길에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문인을 대동하는 사건을 보면서 이 대통령의 신념 부재의 한 단면을 확인하는 것 같아서 씁쓸하다. 사전에 자신의 지지층을 위한 정지작업이 반드시 필요했다.

부지런한 대통령으론 부족

한편 정치력은 필수적이다. 반대파를 포용하고 이들과 더불어 일을 도모하는 일은 지도자의 그릇됨을 나타내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일을 되도록 만드는데 필수적인 부분이다. 여권 내의 계속되는 논란, 국회를 대하는 방법을 볼 때 이제까지 포용력과는 거리가 먼 행보가 계속됐다. 결과적으로 행정부가 추진하는 일이 번번이 국회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거부된다. 끝으로 전후 14년간 독일의 고도성장을 이끌었던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는 고별방송에서 “정치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용기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주저주저하지 않고 결정적인 사안을 밀어붙일 수 있어야 하는데 아쉬움을 느낄 때가 많다.

매력과 카리스마가 있지 않고 정치적 신념이 굳건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정치력과 용기가 뛰어나지 않다면 앞으로 무엇으로 이 나라를 이끌어 가려고 하는가? 정치에서 부지런함과 성실함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지지자가 속속 등을 돌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보면서 필자가 이 대통령과 집권세력에 묻고 싶은 질문이다.

공병호 공병호경영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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