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센터, 어제 오전 9시55분31초에 P파 감지
제주 뺀 전국 관측소서 확인… ‘공중음파’도 관측
강릉방사능측정소 “낙진 내리나” 확인작업 비상
25일 오전 9시 55분.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동 기상청 국가지진센터에 설치된 국가지진감시상황시스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진파가 감지될 때 켜지는 신호다. 발신지는 강원 속초관측소. 자료수집시스템 모니터에 불규칙하게 엇갈리는 파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감지되는 P파(진행 방향과 진동 방향이 같은 지진파)의 진폭이 매우 컸다. P파의 진폭은 40여 초 뒤 나타난 S파(방향이 다르고 속도가 느린 지진파)보다도 훨씬 컸다. S파의 진폭이 P파보다 큰 자연지진 파형과는 정반대의 모습. 바로 ‘인공지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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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초 만에 지진파 감지
북한의 핵실험 여부는 우선 지진파를 통해 알 수 있다. 지진계가 감지한 지진파의 형태에 따라 자연지진인지 아니면 인위적인 폭발에 의한 인공지진인지를 구분한다. 리히터 규모 4.4의 이날 지진은 오전 9시 55분 31초 속초관측소에서 처음 감지됐다. 이곳에는 주로 단거리 지진을 관측하는 단주기 지진계가 설치돼 있다. 북한지역 지진관측을 위해 지난해 말 경기 연천군 등 휴전선 근처 3곳에 설치된 시추공 지진계도 지진파를 관측했다.
관측자료를 분석한 결과 진앙은 북위 41.28도, 동경 129.13도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근처로 확인됐다. 지진파 발생 시간은 속초관측소 감지보다 48초 빠른 오전 9시 54분 43초로 추정됐다. 국가지진센터는 지진파의 형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자연지진의 경우 P파보다 S파의 진폭이 훨씬 크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날 지진파형에서는 P파가 S파보다 훨씬 크게 나타났다. 인공지진일 가능성이 높았다.
오전 10시 12분경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강원 고성군 간성관측소에 설치된 음파측정기가 ‘공중음파’를 관측했다. 공중음파는 폭발물이 터질 때 발생한다. 주파수 대역이 20헤르츠(Hz) 이하로 사람은 들을 수 없다. 무엇보다 자연지진에서는 공중음파가 발생하지 않는다. 이번 지진파가 사실상 인위적인 폭발에 의한 인공지진이 확실해진 것이다.
기상청 이덕기 지진감시과장은 “1차 핵실험 때 감지된 지진은 이번보다 훨씬 작은 규모”라며 “제주도를 제외하고 전국 대부분 관측소에서 시차를 두고 지진파가 감지됐다”고 말했다.
○대덕연구단지는 초비상
비슷한 시간, 관련 연구소들이 있는 대전 대덕연구단지에는 비상이 걸렸다. 연구소들은 각기 비상체제를 유지하며 핵실험 여부와 정확한 인공지진의 강도, 장소, 시간 등을 파악하기 위해 연구원과 장비를 동원했다. 감시와 분석은 지하(지진파), 지상(방사능), 공중(항공촬영) 등 육해공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센터는 군과 정보기관 요원들을 제외한 외부인의 상황실 출입이 완전히 통제됐다. 연구원들은 3교대로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밤샘 작업에 매달렸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관계자는 “지난번 1차 북한 핵실험 당시 여러 기관에서 지진파 분석 자료를 내놓는 바람에 혼선이 빚어져 이번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기상청에 보고만 하고 발표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 항공우주연구원은 위성 아리랑 2호를 활용해 북한에서 발생한 인공지진 장소 주변 촬영을 검토하고 있다. 아리랑 2호에는 가로 1m, 세로 1m 크기의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위성카메라가 실려 있다. 지구 상공 685km에서 하루 14바퀴씩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아리랑 2호는 이날 오전 핵실험 추정 지역인 풍계리에서 많이 떨어진 상공에 있었다. 항공우주연구원 측은 “1차 핵실험 때처럼 이번에도 복잡한 갱도에서 핵실험이 실시됐다면 위성사진을 통해 실험사실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방사능 물질 확인에 주력
남은 과제는 핵실험에 따른 방사능 물질을 확인하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소 등 방사능 시설을 관리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2006년 10월 1차 북 핵실험 뒤 방사능 물질을 탐지하는 이동식 장비인 ‘사우나(SAUNA)’를 도입했다. 이 장치는 핵실험 뒤 공기 중으로 새어 나온 크세논과 크립톤, 세슘 등 공기 중에 떠도는 소량의 방사능 물질을 탐지한다. 당시 이 장비는 핵실험 직후 발생한 방사선 입자들이 3, 4일 만에 한반도로 넘어온 것으로 관측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 측은 사우나를 몇 대 더 들여와 전국 일원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또 전국 70개 유무인 측정소의 방사능 및 방사선 측정치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은 전국 방사능 측정소에 방사선 데이터 전송 주기를 15분에서 2분, 방사능 분석 주기를 1개월에서 1일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핵실험 장소인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약 320km 떨어진 강릉지방방사능측정소는 비상이다. 고용량 공기채집장치 등을 이용해 강수와 낙진, 공기 부유물질 등의 방사능 오염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 이날부터 본격적인 채집활동을 시작했지만 아직 특이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