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2차 핵실험은 지난해 12월 수석대표회담 이후 동력을 상실한 6자회담의 운명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2002년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 개발 이후 발발한 2차 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2003년 8월 첫 회의를 연 6자회담은 그동안 2005년 9·19공동성명, 2007년 2·13합의 등의 성과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6자회담은 사실상 미국과 북한의 양자합의를 추인하는 형태로 변질되면서 무용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북한은 4월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안보리 결의 1718호 위반이라며 의장성명을 내자 “6자회담에 절대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6자회담의 그 어떤 합의에도 더는 구속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계에서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핵문제를 다룰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부시 행정부 시절 대북특사로 활동했던 찰스 프리처드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공개적으로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나올 경우 1990년대에 실시됐던 4자회담 형태의 새로운 다자회담이 출현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일본은 납북자 문제의 우선 해결을 주장하며 6자회담의 진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상대적으로 한반도에 대한 ‘지분’이 적다는 것.
하지만 미국과 중국, 한국은 즉각적인 6자회담에 대한 ‘사망선고’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여전히 미국은 6자회담이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25일 발표한 성명에서 “미국은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6자회담에 참가하는 동맹국 파트너들과 협력하겠다”고 말해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노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실적으로 4자회담의 출범도 쉽지 않아 보인다. 워싱턴 한 외교소식통은 “이미 틀 내에 들어온 국가를 배제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일본이 미국의 중요한 우방 중 하나라는 점에서 미국이 일본을 배제하는 결정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6자회담 의장국의 지위를 국제안보 문제에 대한 지도력 향상의 계기로 삼고 있는 중국 정부 역시 6자회담을 깨는 데 반대하고 있다.
새판짜기가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어가는 모양새란 점도 미국으로서는 꺼려지는 대목이다. 북한은 새로운 회담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북-미 간 군축대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