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추가 협의 불투명
입주기업들 최악상황 대비
일부업체 “철수하는게 낫다”
북한이 개성공단 관련 계약의 무효를 선언한 데 이어 25일 핵실험까지 강행하면서 개성공단은 깊은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핵실험으로 개성공단에 한층 불리한 여건이 조성됐고 폐쇄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일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 사이에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남북경협보험에 따른 보상 가능성과 범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 개성공단 폐쇄 가능성 높아져
대북 전문가들은 핵실험이 북측의 초강수 압박전술이라는 점에서 개성공단이 앞으로 더 큰 난관에 봉착할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우선 우리 정부가 제안했던 개성공단 관련 남북협의는 이뤄지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15일 북측이 개성공단 계약 무효를 선언한 데 대해 우리 정부는 일단 만나서 풀자며 당국간 접촉을 제안했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인 ‘비핵개방 3000’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상황이 벌어져 개성공단 문제만 분리해 대응하긴 힘들 것”이라며 “북측도 대남정책인 개성공단보다 북-미관계에 해당하는 북핵 문제에 더 치중할 가능성이 높아 남북협의가 예정대로 열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은경제연구소 조봉현 연구위원도 “이번 핵실험으로 정부가 북한을 만나야 할 명분이 사라졌다.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개성공단 문제만 논의하기는 사실상 힘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공단 폐쇄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선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조 연구위원은 “다음 주쯤 남측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담은 마지막 통지문을 북측이 보낼 것”이라며 “미리 정해놓은 시나리오에 따라 공단 폐쇄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북측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일부 기업을 중심으로 개성공단이 존속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양 교수는 “개성공단 부실의 책임을 남측에 떠넘기기 위해 북측이 더욱 강화된 조치를 들고 나올 수 있다”면서도 “개성공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결정한 사업인 만큼 일부 경쟁력 있는 기업들을 남겨서 계속 운영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고 전망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우리 국민의 북한 방문을 당분간 허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25일 현재 총 924명의 한국 국민이 북한에 머물고 있다. 이 중 개성공단에 871명이 있다.
○ 입주기업들 “이젠 공단철수 대비할 때”
최근 잇따른 대북 악재로 큰 손실을 입은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핵실험 소식에 크게 낙담했다. 지난해 이후 입주한 일부 후발 업체들은 “차라리 개성공단을 폐쇄하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개성공단기업협회는 25일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고 대책 논의에 들어갔다. 협회 관계자는 “이미 주문량이 바닥 상태여서 북핵 문제에 따른 추가 피해는 크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핵실험 이후 ‘개성공단 폐쇄론’이 제기되는 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최근까지 공단 회복에 희망을 걸었던 입주기업들의 시각은 싸늘해졌다. 지난해 개성공단에 입주한 한 신발공장 대표는 “바이어 이탈로 추가 손실을 입느니 차라리 개성공단이 폐쇄돼 경협보험의 혜택이라도 받고 싶다”고 토로했다. 다른 입주업체 대표는 “공단이 폐쇄되면 개성에만 공장을 둔 상당수 입주업체들은 대체 생산이 힘들어 파산이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경협보험의 수혜대상을 확대하는 등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