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보다 3시간 이상 지체
오늘 새벽 봉하마을 ‘귀향’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각계각층의 애도 속에 발인제와 영결식, 노제, 화장을 거쳐 30일 새벽 ‘귀향’했다. 그의 유골은 생가와 사저가 내려다보이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산의 사찰인 정토원에 임시 안치됐다. 이날 전국 사찰에서는 그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49재 초재(初齋)를 올렸다.
○ 수원시 연화장서 화장
노 전 대통령의 화장이 거행된 경기 수원시 연화장은 고인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려는 시민 8000여 명(경찰 추산)이 찾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연화장 입구 3km 앞부터 차량을 통제하자 시민들은 진입로 주변에서부터 노란 풍선을 들고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량을 맞이한 뒤 운구차량을 따라 연화장까지 길게 줄이 이어졌다.
노 대통령의 시신을 실은 영구차는 당초 예정보다 3시간 늦은 오후 6시 7분경 연화장 내 승화원 앞에 도착했고 의장대 10명이 시신을 운구대차에 안치했다. 이어 야외에 마련된 분향소에서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 정연 씨 등 유가족이 분향을 마치고 곧바로 승화원 내 분향실로 이동했다. 유가족들이 마지막 고별인사를 한 후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화로에 들어갔다. 당초 분골(粉骨)하지 않을 예정이었지만 화장 직전에 유족들이 뜻을 바꾸었다. 화장을 마친 뒤 유골함을 앞세운 운구차량은 오후 8시 55분 김해 봉하마을을 향해 출발했다.
○ 봉하마을 도착
예정보다 크게 늦은 30일 새벽 노 전 대통령 유해와 유족이 봉하마을에 도착하자 지지자와 조문객들은 다시 눈물로 맞았다. 도착 전 ‘진도 씻김굿보존회’ 회원들은 씻김굿으로 고인의 영혼을 달랬다. 노 전 대통령의 발인제가 끝난 뒤에도 봉하마을 분향소에는 하루 종일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봉화산 정토원 수광전(壽光殿)에 임시 안치됐다. 영정과 향나무 유골함 도착에 맞춰 영혼을 법당으로 모시는 반혼제가 올려졌고 개문계(開門戒)와 삼보계(三寶戒) 독송을 마친 뒤 영가단에 모셨다. 정토원 선진규 원장은 “전직 대통령 유골을 안치한 만큼 사찰과 법당에 대한 경찰의 경비와 관리가 강화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안장식과 비석 제작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49재를 전후해 유족들이 장지를 선정하면 영구 안장된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 등이 사저 인근에 평장(平葬)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최종 결정은 미뤄졌다. 수목장도 거론되고 있다. 고인의 “작은 비석 하나 세워 달라”는 유언에 따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아주 작은 비석건립위원회(위원장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가 구성됐다. 비문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낸 황지우 시인이 짓는다. 비석 제막은 가능하면 유해 안장식에 맞추되 늦어질 경우 노 전 대통령 생일인 9월 24일(음력 8월 6일) 무렵이 될 수도 있다.
김해=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