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쇄신특별위원회가 2일 박희태 대표 등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쇄신위는 “지도부가 3일까지 책임지지 않으면 활동을 종료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이번 결정을 둘러싸고 당내 계파 간에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데다 쇄신특위가 지도부에 모든 책임을 떠넘겨 버린 측면도 있어 당분간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4일 열리는 의원연찬회가 지도부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를 결정짓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 쇄신특위, 9시간 마라톤 회의
쇄신특위는 2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9시간 동안 쇄신 방안을 놓고 전체회의를 가졌다. 원희룡 위원장은 회의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와 청와대의 대대적인 인사 쇄신과 당 지도부 책임 등 두 가지 요구 사항을 발표했다. 원 위원장은 “지도부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특위 활동의 종료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위의 합의사항을 놓고도 위원별로 해석이 제각각이었다. 한 친이(친이명박)계 의원은 “사실상 당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 친박(친박근혜)계 의원은 “정부와 청와대 쇄신 등 첫 번째 요구사항에 무게가 실린 것”이라고 말했다.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당 지도부로부터 쇄신을 위임받은 특위가 모태(母胎)의 책임론을 제기함으로써 특위는 할 일을 다한 셈”이라고 해석했다. 이 때문에 당내에선 “특위가 결론을 도출하지 못하자 책임을 당 지도부에 떠민 격이 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 조기 전당대회 놓고 계파 간 격론
특위는 조기 전대 개최 여부를 놓고 계파별로 고성이 오갈 만큼 격론을 벌였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친이계는 지도부 사퇴와 조기 전대를 주장했다. 김성태 의원은 “서울역 앞에서 봇짐을 지는 지게꾼도 차례가 있었다”며 “당이 먼저 인적 쇄신을 한 뒤 청와대와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4월 재·보궐선거 때 고령의 박 대표가 안쓰러울 정도였다”며 사퇴를 요구했다. 임해규 의원은 “재·보선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에서 민심 이반이 확인됐다”며 “조기 전대로 당정청 관계를 새로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태근 의원은 “지금 전대를 해도 10월 재·보선이 어렵다는 패배주의가 만연해 있고 계파 간 갈등이 심화된다는 얘기도 많은 것 같다”며 “그렇더라도 우선은 국민에게 우리 지도부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태근 임해규 의원은 정회 시간 동안 권택기 차명진 김용태 정두언 조문환 의원 등과 국회에서 별도 기자회견을 갖고 조기 전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반면 친박계 이정현 의원은 “안쓰러운 박 대표만 거론하지 말고 이명박 대통령을 정면으로 거론하라”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진복 의원은 “친박 무소속으로 당선된 뒤 복당한 의원들에게 당협위원장을 주는 문제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는 또 “4월 재선거에서 졌다고 전당대회를 한다면 10월 재선거에서 졌을 때 또다시 전당대회를 열 것이냐”는 주장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 박 대표의 선택은
김효재 대표비서실장은 통화에서 “쇄신특위 결정을 공식적으로 전달받은 게 아니고 언론에 얘기한 진의도 잘 모르겠다”며 “일단 내일(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해보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그동안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는 명분이 없는 상황에서 떠밀려 나갈 수는 없다”고 강조해왔다. 대표실 관계자는 “지금처럼 목에 칼을 들이대는 것은 정치 도의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론 주류계 소장파가 주도하고 있는 지도부 사퇴 주장이 당내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게 되면 사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당은 조기 전대에 따른 지도부 공백과 함께 차기 당권을 둘러싼 극심한 내분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지금처럼 주류 소장파와 원로그룹, 친박계 간 이견이 팽팽하면 지도부 사퇴와 조기 전대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한 친이 직계 의원은 “소장파가 중심이 된 지도부 사퇴 주장은 결국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치고 현 지도부가 적어도 10월 재·보선까지는 당을 끌고 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재오계를 중심으로 하는 주류 소장파는 4·29 재·보선과 원내대표 경선을 거치면서 주류가 당을 끌고 가야 한다는 ‘주류 책임론’을 주장하고 있지만 이재오 전 의원의 정계 복귀를 위한 포석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이상득 의원 측은 쇄신파의 요구가 지도부 퇴진을 넘어 이 의원의 후선 퇴진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
친박계는 이재오계가 당 전면에 부상하는 시점에서 당 대표까지 장악할 경우 세 위축이 두드러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부 친박계 의원은 박 대표가 물러나면 차기 전대까지 정몽준 의원이 당 대표를 맡아야 하는데 이 경우 정 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의 대권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기 전대를 꺼린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與 수석 원내부대표 김정훈▼
한나라당은 2일 원내부대표 13명과 정책조정위원장 6명을 선임했다. 원내부대표에는 김정훈(수석·친이계) 신성범(공보) 신지호 원희목 박보환 정미경 황영철 김동성 손범규 강석호 성윤환 장제원 안효대 의원 등으로 정해졌다.
정조위원장은 1정조 주성영, 2정조 황진하, 3정조 김광림, 4정조 백성운, 5정조 신상진, 6정조 최구식 의원이다. 한나라당은 3일 의원총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원내부대표와 정조위원장 인선 결과를 공식 발표한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