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슈퍼노트’ 고리로 대북 금융제재 고삐 죌 듯

  • 입력 2009년 6월 4일 02시 59분


“南으로 밀반입은 한국경제 교란 의도일 수도”

한미 당국, 위폐 제작원료 北반입 차단 나서

북한의 달러화 위조는 미국 사회가 특히 민감하게 ‘나의 일’로 여겨온 이슈다. 1989년 ‘슈퍼노트’라 명명된 위조 달러화가 처음 발견된 이래 미 정부와 의회는 달러의 국제 공신력을 떨어뜨리고 미국 주도의 국제 금융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로 보고 방대한 인력을 투입해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추적을 해왔다. 이 때문에 2007년 초 조지 W 부시 백악관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에 예치돼 있던 북한 불법자금을 풀어주는 등 금융제재의 고삐를 놓으려 할 때 재무부와 의회에선 “슈퍼노트 추적은 외교적 흥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외교 업적 남기기에 급급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금융제재를 풀어줬고 이어 2·13 베이징 북핵 합의가 나왔다. 슈퍼노트 제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온 북한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합의의 바탕엔 북한이 더는 달러화 위조에 손을 대지 않겠다는 다짐이 깔려 있었다. 북한이 슈퍼노트 제조 동판을 내놓았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하지만 미 재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은 슈퍼노트 유통정보를 계속 입수해왔다. FBI는 2004년부터 추적해온 중국계 미국인 첸 치양리우 씨(45)가 중국 등에서 들여온 슈퍼노트를 라스베이거스 도박장 등에서 사용한 사실을 확인하고 2007년 7월 체포했고 지난해 9월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어 지난해 11월 부산에서 다시 슈퍼노트가 발견된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 시절 대북 금융제재를 주도한 스튜어트 레비 재무부 테러·금융정보 차관과 대니얼 글레이저 부차관보를 유임시킨 데도 이 업무의 연속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

워싱턴 소식통은 “미국은 슈퍼노트의 한국 밀반입 기도에 국제 브로커들이 개입했을 것으로 보며, 북한이 한국을 유통 및 세탁장소로 활용함으로써 한국 경제를 교란시킬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며 “이는 한미 양국이 아주 심각하게 주목해 온 사안”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제작·유통에 관여했다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 북한은 각 기관이 알아서 ‘자력갱생’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일부 기관이 충성자금 및 운영비 마련을 위해 손을 떼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어쨌든 슈퍼노트 문제가 현재진행형임이 확인된 것은 미국과 우방국들로 하여금 대북 금융제재 고삐를 죄는 강한 명분이 될 수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이 확정되면 미국은 자체 제재안의 핵심으로 금융제재를 대폭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중국 마카오 홍콩 유럽에서 북한과 거래하는 은행들에 슈퍼노트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대북 거래의 위험성을 통보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은 국제금융시장에서 미아(迷兒)가 되고 지도부의 돈줄이 막힐 수 있다.

그런 금융제재는 북한을 핵 문제 협상장으로 나오게 하는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일의 선후관계상 슈퍼노트 문제가 최근의 북핵 위기보다 먼저 독립적으로 일어났지만 상황은 2005∼2006년과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이 2005년 9월 BDA은행의 북한 자금 2500만 달러를 동결한 것도 재무부 차원에서 진행한 일이었지만 이는 미국에 최대 협상용 무기가 됐고 결국 북한이 두 손 들고 협상장으로 나오게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오바마 정부엔 당시 금융제재의 효과를 실감했던 사람이 많이 남아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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