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딜레마와 세습

  • 입력 2009년 6월 5일 18시 59분


독재자들은 왜 세습의 유혹을 받는 것일까. 세습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서 3남 김정운을 후계자로 지명해 3대 세습을 시도하는 가운데 비교정치학적 관점에서 권력세습 문제를 다룬 보고서가 나왔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남북협력센터 소장은 5일 연구원 홈페이지에 올린 '권력승계의 딜레마와 권력세습'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06년까지 3년 이상 집권한 독재국가 258개 가운데 권력세습을 시도한 경우는 23건이며, 이 중 9건이 성공했다"며 "9건 모두는 엘리트들이 세습을 지지한 경우였다"고 주장했다.

박 실장은 '김정운 3대 세습'이라는 구체적인 주제보다는 독재와 세습이라는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면서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했다. 박 실장은 먼저 '독재자는 왜 세습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독재체제에서 권력 승계의 딜레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재자는 후계자를 지명하거나 지명하지 않거나 모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독재자가 강력한 후계자를 키우면 그가 권력을 찬탈하거나 내부 분열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렇다고 후계자를 뽑아놓지 않거나 후계자에게 독자적 권력 기반을 구축해주지 않으면 권력자가 사망한 이후 무절제한 권력투쟁이 발생할 수 있다."

세습은 독재자가 이런 딜레마를 관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것이 박 실장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다시 말해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면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 세습은 엘리트들에게도 좋은 방식이다. 엘리트들도 독재자와 맺었던 거래관계를 통해 아들의 승계 이후에도 계속해서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엘리트 중의 하나가 후계자로 선정되면 현존 엘리트 사이의 권력 배분이 변하게 된다. 엘리트들 사이에 권력투쟁이 발생해 어느 한 세력이 몰락하거나 전체 정치체제 자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에 비해 세습은 엘리트의 지위와 특권의 변화 없이 권력 계승을 가능하게 해준다."

두 번째 질문은 어떻게 세습에 성공할 수 있느냐는 것. 박 실장은 정치학자 제이슨 브라운리라는 정치학자가 2007년 학술잡지 '월드 폴리틱스'에 실은 논문을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2차 대전 이후 3년 이상 집권한 258개의 독재국가 사례 중에서 세습이 시도된 경우는 23건이고 성공한 경우는 9건이라는 것이다. 이 중 아시아에서 성공한 사례는 대만의 장제스(蔣介石·1949~1975)와 장징궈(蔣經國·1975~1988), 북한의 김일성(1948~1994)과 김정일(1994~현재), 싱가포르의 리콴유(1956~2004)와 리센룽(2004~현재) 부자 등이다. 이밖에 1956년 니카라과, 1961년 도미니카공화국, 1971년 아이티, 2000년 시리아, 2003년 아제르바이잔, 2005년 토고의 사례가 있다.

박 실장은 "위의 경험적 사례들을 보면 세습은 후계자가 비교적 젊고 경험도 없고 독자적인 제도적 기반이 없는 경우에도 주변 엘리트들의 지지를 받았던 경우였다"며 "그 이유는 세습 후계자의 존재로 고위 관료들의 안전이 묵시적으로 보장됐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권력세습은 권력 이양에 따른 불확실성을 통제해 현존 체제의 연속성을 보장하려는 현존 통치자와 주변 엘리트들의 공동 프로젝트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마지막 질문에서 박 실장은 말을 아꼈다. 다만 박 실장은 "권력 세습의 궁극적 성패와 세습 후계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사회가 직면한 대외적 정책 난제들이지만 권력이 세습이 된다고 해서 이를 풀어가는 해결 능력이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북한처럼 공과 사가 구별되지 않는 개인독재의 경우 엘리트 분열을 포함한 정치변동은 일반적으로 대중의 저항에 의해 시작됐다"고 비관적 관측을 덧붙였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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