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8일 비정규직 근로자의 사용 기간을 2년으로 규정한 현행 비정규직법의 관련 조항 적용 시기를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에 따르면 7월 1일부터 2년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해고해야 하지만 적용 시점을 유예할 경우엔 비정규직의 해고 대란을 막을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적용 시기를 3년 미루면 2012년 7월 1일까지는 2년 이상 고용된 비정규직이라도 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해고하지 않고 비정규직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한나라당은 이날 당정회의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 간담회를 잇달아 열고 이같이 의견을 모았으며 의원총회 및 야당과의 협상을 거쳐 구체적인 유예 기간을 결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관련법 시행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여당이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자’는 정부 개정안과 다른 안을 추진하면서 갈팡질팡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은 야당에 반대의 빌미를 줄 수 있고 정책 혼선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민주당은 적용 시점을 유예하겠다는 한나라당 방안은 합리적인 대안이 아니라며 반대하고 있다.
○ 정부 한때 ‘4년 연장안’ 거론
이날 환노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 간담회에서 대다수 의원은 ‘기간 연장’보다는 ‘적용시기 유예’를 주장했다. 환노위 간사인 조원진 의원은 “비정규직법 제정 취지가 정규직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적용 시기를 유예한 뒤 경제상황을 봐가며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엄현택 환노위 수석전문위원은 “적용 시기를 미루면 정규직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당론 채택 문제와 관련해 신상진 제5정조위원장은 “4월 정책의총에서도 ‘적용 시기를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면서 “환노위 의원들도 대부분 유예에 동의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예 기간으로는 △2년 △3년 △4년 안이 거론됐으며 최종적으로 원내대표단 협상에 일임하기로 결정했다. 한나라당은 환노위 소집을 요구한 상태다.
정부는 당정회의에서 적용시기를 유예하기보다는 기존에 정부가 제출한 개정안대로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했지만 한나라당이 적용 시점 유예 방안을 당론으로 정할 경우 당론에 따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 민주 “與 정책 능력 의심스러워”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은 적용 시기의 유예가 사용 기간 연장과 비슷한 것이라며 반대 태도를 분명히 했다. 적용 시기를 유예한다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유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여야가 합의해서 만들고, 아직 시행도 되지 않은 법을 고치자고 하니 한나라당이 정책 능력이 있는 책임 정당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법 적용 이후 비정규직 실업자가 70만 명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정부 주장은 과장된 것으로 비정규직 실업자는 매월 최대 1만8000명에 불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지원을 늘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주당은 예산 6000억 원이면 7월부터 연말까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기업에 1인당 50만 원씩 지원할 수 있으며 비정규직 20만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