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모습의 뱃놀이 유엔 제재 앞두고 중국쪽으로 자주 등장
中선 매일 전투기 출격, 탱크도 대규모 이동…유사시 대비하는 듯
“안녕하십네까? 안녕하십네까?”
11일 오전 10시 반경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단둥(丹東) 시 외곽의 북한과 중국의 접경지역. 북-중 국경선인 철조망 앞으로 다가간 중국인 택시운전사는 서툰 한국말로 철조망 너머를 향해 소리쳤다. 몇 번을 부르자 30m 정도 앞 풀 숲에서 웃통을 벗은 한 북한군 젊은이가 돌연 모습을 드러냈다. 택시운전사는 담배 피우는 손짓을 하더니 2위안(약 366원)짜리 싸구려 중국 담배 ‘다펑서우(大풍收)’ 한 갑을 국경 너머로 힘껏 던졌다. 그리고 택시 안의 기자에게 서둘러 사진을 찍으라고 손짓했다. 암묵적으로 허락을 받았다는 표시였다.
철조망 너머로는 벼가 심어진 넓은 들판이 펼쳐졌다. 하지만 철조망과 엉성하게 만든 참호들, 어디선가 불쑥 등장하는 북한 군인이 들판의 평화로운 풍경에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지난달 25일 북한 핵실험과 무력충돌 위협 발언, 유엔 대북제재 결의 임박 등 북한을 둘러싼 세계정세의 소용돌이에도 압록강 너머의 신의주는 적어도 겉으로는 평화로웠다. 하지만 단둥에는 전과 다른 분위기가 조금 감돌고 있었다.
○ 평화로운 6월의 압록강
이날 압록강에서는 ‘민흥 433’이라고 쓰인 북한 유람선이 붉은색 스카프를 맨 어린 학생들을 잔뜩 태우고 뱃놀이를 했다. 유람선은 중국 측 강변에 가깝게 접근했고 학생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었다. 현지 중국인은 “요즘 전과 달리 북한 유람선이 자주 나타난다”고 말했다. 과거엔 어쩌다 한번씩 등장했는데 이달 들어 꽤 자주 본다는 얘기였다.
관광객을 잔뜩 태운 중국 유람선도 북한 쪽 강변에 접근했다.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유일한 다리인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 위에는 이날 컨테이너를 실은 대형 화물차와 버스 승합차 등이 북한으로 가고 있었다. 북한 쪽 통관이 지체되면서 차량 수십 대가 940m에 이르는 다리 위에 줄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이 다리와 나란히 세워졌지만 6·25전쟁 때 끊어진 압록강 철교에서 장사를 해 온 한 중국인은 “주중에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을 빼고 중국과 북한 차량이 오간다”며 “중국 차량은 150여 대, 북한 차량은 수십 대인데 오가는 차량이 지난해와 거의 변동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여행객은 좀 줄었으나 한국인 골프 관광은 예년 수준이라고 한국인이 자주 이용하는 압록강변호텔 관계자는 귀띔했다.
○ 민감한 시기, 北-中 이례적 군사훈련
하지만 전과 달리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사람이 많았다. 복수의 단둥 주민은 북한군이 신의주에서 지난주 내내 헬기 한두 대를 띄우고 낙하훈련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오전 오후에 한두 차례씩 군인을 태우고 비행장을 이륙해 중국 쪽 영공 경계선을 따라 한바퀴 돈 뒤 비행장으로 되돌아가 낙하훈련을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훈련이 예년에 비해 훈련 기간이 길고 규모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교민은 “해마다 하루 이틀 낙하훈련을 했는데 최근에는 날씨만 좋으면 거의 훈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중국인은 이곳뿐 아니라 단둥에서 압록강 상류 쪽으로 55km 떨어진 허커우(河口)의 건너편 북한 상공에서 요즘 북한군이 수송기로 낙하훈련을 한다고 전했다. 허커우는 6·25전쟁 당시 중공군이 북한을 지원하기 위해 도강한 곳이다.
또 이날 오전 9시 40분경 기자가 탄 비행기가 민군 공용 공항인 단둥기지에 도착했을 때 중국 전투기들도 훈련을 하고 있었다. 중국 전투기들이 2대씩 짝을 지어 굉음을 내며 잇달아 이륙했다. 또 수십 대가 비행장에 도열해 있었다. 한 중국인은 이 전투기들이 ‘수호이 27’로 열흘 전부터 거의 매일 훈련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한국 언론은 중국 언론을 인용해 단둥기지에 북한 위기 상황 대응 또는 한반도 공군력 균형을 위해 중국 정부가 제3세대 전투기인 ‘수호이 27’을 이 기지에 배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