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의원 “北, 미얀마 핵개발 돕는것 아니냐”
11일 오후 2시(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장. 스티븐 보즈워스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청문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번 청문회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2차 핵실험을 규탄하는 결의안 초안이 채택된 후 처음 열리는 데다 여기자 2명이 장기 억류되고 있는 상황이어서인지 대성황을 이뤘다. 150석의 방청석은 물론이고 사람이 설 수 있는 공간은 한 뼘도 남지 않아 문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시작 30분 전부터 줄을 섰던 방청객 중 상당수는 입장하지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답변에 나선 보즈워스 특별대표는 특유의 저음에 무뚝뚝한 어조로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미국 대응을 차분하게 설명해 나갔다. 대표적인 대북(對北) 포용론자이자 북한과의 대화 추진을 임무로 하는 보즈워스 대표이지만 이날만큼은 ‘협상보다는 제재’를 먼저 화두로 올렸다.
“미국의 목표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이며 북한을 절대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이 대결국면을 이어간다면 우리는 미국의 안보는 물론이고 동북아지역 동맹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다.”
그는 “동맹국과의 협조 하에 미국의 군사적 능력과 확장된 억지력을 증강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를 신중하게 취하고 있다”며 “최근 동북아지역 순방에서 북한이 도발적인 행동을 계속할 경우 미국이 취할 조치의 윤곽을 잡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보즈워스 대표는 시종일관 차분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6자회담을 진두지휘했던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차관보(현 주이라크 대사)가 의원들의 질문에 따라 톤을 달리하며 화려한 수사를 섞어 답했던 것과는 판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의원들의 공격적인 질문에도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않는 ‘모범답안’을 내놓았고 대북금융제재 가능성이나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에 대해 “답변할 위치에 있지 않다”며 즉답을 피했다. 신뢰감을 주는 한편 다소 맥 빠진 분위기이기도 했다.
보즈워스 대표는 “취임 직후 위협이 아닌 포용 정신에 입각해 평양방문을 제안했지만 오늘 현재까지 북한으로부터 아무 답도 받지 못했다”며 “이번에 북한이 대화에 다시 나선다면 합의 사항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다루는 방법은 우리가 원하는 북한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인정하고 그에 맞춰 대응하는 것이 옳다”는 소신을 밝힌 그는 미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문제에 대해서는 “실효성이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서는 북한과 미얀마 간 핵 협력설이 공식 제기되어 눈길을 끌었다.
상원 외교위 공화당 간사이자 의회에서 손꼽히는 북한 문제 전문가 리처드 루거 의원이 북한과 미얀마가 핵 협력을 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제기한 것. 그는 모두 발언에서 “북한 항공기와 선박 편으로 미얀마에 도착한 화물의 정체가 뭐냐”며 “북한이 미얀마의 핵 프로그램 개발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맞는 것이냐. 맞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루거 의원은 이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통로 역할을 할지도 모르는 북한의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조사하기 위해 어떤 수준의 국제적 협력이 있으며, 어느 정도의 진전이 있느냐”며 연달아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보즈워스 대표는 이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