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독재자 중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역사가 가르쳐주고 있다. 나는 어떤 개인과 국가도 불행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 발언은 요즘 정치권에서 거센 논란을 빚고 있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이명박 대통령 비판 발언이 아니다. 1999년 4월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당시 대통령이던 DJ를 향해 한 말이다. YS는 이 자리에서 “현 정부는 언론 탄압, 야당 파괴, 인권 탄압, 부정 선거 등을 자행하는 독재 정권”이라며 “김대중 대통령은 독재자”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 전직 대통령이나 야당이 현직 대통령과 정부를 ‘독재자’ ‘독재 정권’이라고 비난하는 행태는 군인 출신 대통령이 사라진 1992년 이후에도 계속돼 왔다.
YS 정부 시절, 정계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DJ와 민자당을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을 만든 김종필(JP) 총재는 1995년 5월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공동집회에서 한목소리로 ‘문민 독재’를 비난했다. DJ는 “김 대통령(YS)의 문민 독재가 우리(국민회의와 자민련)를 손잡게 만들었다”며 “김 대통령은 독재자의 길을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DJ 정부 시절에는 반대로 YS가 DJ를 겨냥해 ‘독재자’라고 공격했다. YS는 1999년 11월 ‘언론대책 문건’ 사건이 터지자 “현 정권의 언론장악 음모를 보면서 스탈린 같은 공산 독재정권의 만행을 다시 보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도 1999년 5월 호남 편중 인사, 정부조직법 개정안 변칙 처리 등을 사례로 들면서 “군사 독재보다 더 무서운 것이 민주주의와 국민의 이름을 빙자한 독재”라고 비난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3년 5월 서청원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정부를 ‘개혁 독재’라고 비난했고, 야당은 2004년 초 청와대가 언론 보도와 관련해 외교통상부 공무원을 조사하자 “지금이 유신 독재 시절이냐”고 비판했다.
이처럼 되풀이되는 ‘독재자’ 비난에 대해 전문가들은 아직도 정치인들이 낡은 ‘독재 대 반독재’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가장 효과적인 지지 세력 결집 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낡은 프레임으로 현재 상황을 극복하려는 시도는 항상 실패했다”며 “‘전직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현 정부에 대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을 되새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