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에 대해 특유의 ‘모호성 유지 전략’을 취해왔다. 프로그램 개발 정도는 물론이고 존재 여부까지 철저하게 베일로 가린 채 미국 등 국제사회를 상대로 협상력을 최대화한다는 전략을 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이 2002년부터 제기한 북한 UEP의 실체를 놓고 미국 내부는 물론이고 국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일부에서는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인사들이 북한을 압박하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거나 부풀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은 2002년 10월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의혹을 공식 제기해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시인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이 완강하게 부인한 가운데 구체적인 증거가 잡히지 않자 미국은 ‘고농축’을 빼고 일반적인 ‘UEP’로 명칭을 바꿨다. 2·13합의 직후인 2007년 2월 말 미국 연방 상원 청문회에 출석한 조지프 디트라니 국가정보국 북한담당관은 “2002년 당시엔 북한이 우라늄 핵무기를 만들 분량의 물질을 구입했다는 것은 신뢰도가 높은(high confidence) 정보였으나 그런 프로그램이 지금도 존속할 가능성은 중간 정도의 신뢰도(mid confidence level)”라고 증언했다. 그동안 정보가 다소 과장됐다는 사실이 이때 드러났다.
이에 따라 2·13합의 직후 국내에서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외교안보 라인에서 일했던 주요 당국자들을 중심으로 2002년 당시의 HEU 의혹이 조작됐다는 주장이 적극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2007년 3월 한 인터넷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가 그 시점에서 근거가 불확실한 HEU 문제를 제기한 것은 거대한 정보조작에 따른 명백한 정책 실패”라고 주장했다. 같은 기사에서 양성철 전 주미대사는 “북한의 HEU에 대한 왜곡은 미국이 벌인 이라크전쟁의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또 문정인 전 동북아시대위원장은 “한일 정부 모두 미국 측에 (북한의 시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켈리-강석주 대화록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도 2007년 3월 28일 한 세미나에서 “(UEP에 대한) 정보 과장과 경수로 (지원) 종료 압박은 미국 네오콘이 주도했다”면서 “상대방 퇴로를 열어주는 방식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전 원장은 14일 통화에서 “13일 북한의 발표로만 보면 경수로 원료 확보를 위한 저농축 우라늄을 개발한다는 뜻”이라며 “2002년 당시 미국의 주장은 이후에 밝혀진 대로 과장되고 왜곡된 것이었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