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도발 밑그림’ 1월에 그렸다

  • 입력 2009년 6월 15일 03시 00분


체제유지 전략 치밀하게 구상
헌법개정-핵실험 차례로 실행

북한은 지난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 이후 체제유지를 위한 대내외 전략을 치밀하게 구상해 올해 1월부터 계획적으로 실행해 왔다.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운 후계자 지명과 대외적 무력시위 등 2009년 상반기 북한의 대내외 행보를 가늠할 단초들을 추적해가면 북한의 ‘큰 그림’은 올해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 ‘3대 세습’ 프로세스 1월에 시작

정보당국은 김 위원장이 올해 초부터 3대 세습을 기정사실화하고 후계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해왔다고 판단했다. 연합뉴스는 1월 15일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1월 8일 노동당 조직지도부에 교시를 하달했다”고 ‘김정운 후계’를 처음으로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후계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도 1월 23일이다. 이런 움직임은 최근 북한이 해외공관에 ‘김정운 후계’를 통보한 사실을 정보당국이 포착함으로써 확인됐다.

또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1월 6일 제12기 대의원 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3월 8일 열린 선거에서 선출된 대의원(한국의 국회의원) 687명은 4월 9일 1차 회의를 열어 국방위원회를 강화하도록 헌법을 개정했다. 3대 세습을 염두에 둔 체제정비인 셈이다. 아울러 김 위원장이 올해 들어 현지지도를 대폭 늘린 것은 후계자가 평양에서 자신의 역할을 대신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 무력시위도 1월부터 준비

북한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고 사흘 뒤인 1월 23일 평양 인근에 있는 산음동병기연구소에서 장거리 로켓 2기를 열차에 실었다. 이 로켓 중 1기는 4월 5일 발사됐다. 북한은 5월 25일엔 2차 핵실험을 했다. 핵실험 준비에도 상당한 기간이 필요해 올해 초에 이미 결정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대남 위협은 새해 벽두부터 시작됐다. 1월 1일자 신년공동사설은 이명박 정부를 ‘파쇼’라고 지칭했다. 1월 17일에는 1998년 이후 처음으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등장해 무력 도발을 위협했다. 이어 남북 간 정치·군사적 합의의 무효화를 선언하고 남측 민항기의 안전을 위협하는 등 지속적으로 무력 도발을 위협했다.

○ 1998년과 2006년 경험 총동원

북한의 전략 실행 방식은 김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오른 1997∼1998년과 1차 핵실험을 한 2006년의 경험을 혼합한 것으로 보인다. 후계자 지명이라는 내부 요인과 남한·미국과의 갈등이라는 대외 요인이 결합된 상태에서 과거 자신들이 경험했던 대내외적 긴장 강화 조치들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노동당 총비서에 취임(1997년 10월)한 다음 해인 1998년에 최고인민회의 선거(7월)→장거리미사일 발사(8월)→최고인민회의 소집과 헌법 개정(9월) 순으로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북-미 간 갈등이 컸던 2006년에도 장거리미사일 발사(7월)→핵실험(10월) 순으로 미국을 압박했다.

신석호 기자·북한학박사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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