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그 시간에 맞춰 그 용기, 가슴에 새기다

  • 입력 2009년 6월 16일 02시 56분


제1차 연평해전 10주년 기념식, 해군본부 주관으로 ‘격상’ 개최

당시 제2함대 사령관 “연평해전 승리 자랑인데 좌파정부 10년 죄인처럼”

“땡땡땡….” “전투배치훈련! 전투배치훈련!”

15일 오전 11시 40분 경기 평택시 평택항 앞바다. 전투훈련을 알리는 방송이 차세대 고속정인 ‘윤영하함’에 울려 퍼졌다. 방송 소리와 함께 방탄모와 구명조끼, 방독면을 갖춘 장병들이 함정 안을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녔다. 배 뒤편으로 달려나간 두 사수는 40mm 함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곧 포신이 좌우로 움직이며 방향을 잡더니 각도를 높여 조준과 발사 준비를 모두 마쳤다. 함포 앞에는 140km 떨어진 적함도 타격할 수 있는 대함유도탄 ‘해성’이 하늘을 향해 서 있었다. 또 함정 앞쪽에 있는 76mm 함포도 적을 찾아 방향을 맞추고 있었다. 조종실에서는 함장인 안지영 소령(39)의 지시와 조타수의 보고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오후 1시. 안 소령은 “전투배치 해제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제야 장병들은 잔뜩 긴장했던 어깨의 힘을 풀고 방탄모를 벗었다. 잃었던 웃음도 되찾기 시작했다.

이날 윤영하함 기동·전투배치훈련은 제1차 연평해전 10주년을 맞아 실시됐다. 국내 첫 최첨단 유도탄고속함(PKG)인 윤영하함은 연평해전과 인연이 많다. 함정명은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윤영하 소령의 이름을 땄다. 함장 안 소령은 1999년 북한군에 완승을 거둔 1차 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25호 고속정의 정장이었다. 윤영하함은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서해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최근 서해북방한계선(NLL) 최전선에 배치됐다.

이날 훈련에 앞서 오전 9시 40분 평택시 제2함대사령부에서는 1차 연평해전 승전 10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기념식은 10년 전 이날의 승전을 되새기고자 당시 승전시간에 맞춰 시작됐다. 그동안 기념식은 2함대사령부 주관으로 열려 왔으나 올해엔 해군본부가 주관했다. 해군 관계자는 “승전의 역사를 통해 빈틈없는 군사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유사시 적 도발을 현장 종결하겠다는 의지를 불어넣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옥근 해군참모총장은 기념사에서 “1차 연평해전은 6·25전쟁 이후 남북 간 발생한 최초의 정규전으로 우리 해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해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제3의 연평해전’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며 “‘적이 우리의 손끝 하나를 건드리면 적의 손목을 자르겠다’는 각오로 적과 싸워 10년 전 완벽한 승리의 전통을 계승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1차 연평해전 당시 참전 지휘관과 장병, 해병대사령관, 역대 작전사령관 및 2함대사령관과 김문수 경기지사, 지역구 의원인 한나라당 원유철, 민주당 정장선 의원 등이 참석했다. 1차 연평해전 때 제2함대 사령관이었던 박정성 예비역 소장은 기념식이 끝난 직후 열린 다과회에서 “해전 당시 선제사격 금지 지시로 우리 손발은 완전히 묶여 웅크린 상태에서 죽을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 교전수칙을 비판했다. 그는 또 “좌파정권의 햇볕정책 때문에 연평해전의 승리는 큰 자랑인데도 지난 10년간 마치 죄지은 것처럼 있었다”며 “당시 정부는 전쟁이 안 일어날 것이라는 선전만 해댔고 그렇게 방심하는 사이에 당했다”고 말했다.

1999년 6월15일 오전 9시 28분 서해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1차 연평해전은 우리 해군의 압도적인 화력 응사로 14분 만인 9시 42분경 끝났다. 북한군은 어뢰정 1척 침몰에 함정 5척 대파, 함정 4척이 중파됐다. 또 북한군은 최소 30여 명이 죽고 70여 명이 다쳤다. 반면 우리 해군은 초계함 1척과 고속정 4척의 선체가 일부 파손되고 장병 9명이 경상을 입었다.

평택=류원식 기자 rews@donga.com


▲동아일보 편집국 영상뉴스팀 배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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