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우려속 “시위용” 시각도
北 변칙 자금거래 차단
국제 금융계 파급력 클 듯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대북 제재의 ‘쌍권총’으로 비유되는 화물검색과 금융제재를 동시에 시작했다. 북한 경제의 목줄을 쥐고 있는 중국을 설득하는 ‘중국 카드’를 제외하곤 미국이 쓸 수 있는 가장 실효성 있는 양대 수단을 동시에 꺼내든 것이다. 다음 달로 예상되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추가 발사에 대비하는 분위기도 올 4월 미사일 발사 직전의 다소 느긋했던 때와는 천양지차다. 새 행정부 출범 후 가장 심각한 안보 도전으로 받아들여지는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화물선, 출발부터 추적=미국은 이미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부터 인공위성과 휴민트(인적 정보망) 등을 동원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 거래 의심 선박들의 움직임을 감시해 왔다. 하지만 요주의 선박이 북한을 떠나자마자 공개 추적에 나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18일 미군 고위관리들이 익명을 전제로 언론에 이를 공개한 것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이 행동이 결여된, 이 빠진 제재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겠다는 백악관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미군 인공위성은 17일 강남호가 출항하자마자 이를 포착했고, 이미 대통령으로부터 유엔 결의 이행을 지시받은 미군 지휘관들은 즉각 추적시스템을 가동했다. 인공위성이 강남호의 위치를 체크하는 가운데 인근 공해상의 미군 함정들이 이동했다. 미국은 중국과 한국, 일본 당국에도 이를 알려 함께 경계하도록 함으로써 해상검색 국제공조 시스템의 가동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번 해상 추적은 실제 검색보다는 ‘시위용’으로 보인다. 안보리 결의안에 강제수색 근거 조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상에서 북한 선박과 직접 접촉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아주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2003년 호주 당국이 급습한 북한 봉수호 사건 때 드러났듯이 북한의 주요 화물선엔 공산당 지도원이 타고 있다. 미군 함정이 근접할 경우 선원들이 당 지도원의 지시로 발포와 자폭 등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미국은 강남호를 항해 내내 추적하면서 이 배가 다른 나라의 항구에 들어가면 그 나라 정부에 검색을 요구하고, 강남호가 그것도 거부하면 연료 공급 거부, 기항 거부 등의 조치를 취하도록 관련국들과 24시간 협조체제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이런 해상 검색 작전이 북한의 WMD 거래에 실제로 얼마나 타격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의 WMD 핵심 부품 거래는 주로 항공편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중국의 공항이 주요 통로다. 북한 화물선 추적이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시스템을 보강하는 한편 중국을 PSI 체제에 한발 들여놓게 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미국은 기대하고 있다.
▽북한 돈줄 죄기 본격화=미 재무부가 발표한 지침은 북한이 안보리 제재를 비켜가기 위해 변칙적인 방법을 동원할 것에 대비해 사전경계령을 발동한 것이다. 북한과 관련된 고객의 △신분을 감춘 차명거래 △금융거래 진원지 은폐 △제3자를 통한 자금 이전 △‘합리적인 목적’이 없어 보이는 반복적인 계좌이체 등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강도를 높일 것으로 예상되는 금융제재의 1단계 조치지만 이것만으로도 금융기관들은 북한 관련 거래에 극도로 몸을 사릴 것으로 보인다. 2005년 미국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자 북한 지도부는 그 어떤 물리적 제재보다도 견디기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2007년 초 북-미 협상 급진전에 따라 미국이 BDA은행의 북한 자금 2500만 달러를 풀어줬지만 세계의 은행들이 이 돈의 평양 송금 중계를 거부한 것도 국제 금융기관들이 불법 자금 관련 거래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준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북한 화물선 ‘강남호’
2035t급 북한 국적의 화물선.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인도네시아를 떠나 북한의 남포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홍콩항에 입항했다가 홍콩 해경의 검문을 받고 정식 억류된 전력이 있다. 당시 미국과 국제사회는 핵무기 또는 대량살상무기(WMD)와 관련된 물품이 선적됐을 것이라는 의심을 가졌지만 폐광물이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