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일본이 정치를 소재로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면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정치를 다룬 대중물에 나타난 한미일 3국의 차이를 스토리를 중심으로 분석해 봤다.》
한국 진흙탕 정치판서 보통사람의 분투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던 초라한 인물(‘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윤락여성 출신 국회의원 후보 예지원, ‘시티홀’의 10급 공무원 신미래)이 주위의 강권이나 벼랑 끝의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반강제로 출마한다. 등장하는 기존 정치인은 대부분 거짓말을 일삼는 사기꾼이거나 파렴치한이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인물. 주인공은 소속 정당도 없고 정치도 모르지만 ‘서민 음식’ ‘서민 패션’ ‘서민 교통’만으로 정치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황영미 숙명여대 교수는 “군사독재나 권위주의 정치문화로 인한 정치 불신과 함께 참여 욕구도 강하다 보니 일반인의 정치무대 진출이 흔히 다뤄진다”며 “이들은 대개 현실적 한계에 부닥치는데, 체제에 저항해 민심을 얻었던 홍경래 임꺽정(이두호 씨 그림) 같은 인물들의 과정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미국 체제 수호하려는 애국자들의 활약
미국 정치물의 주인공은 대체로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기반을 둔 젊은 인재들(‘밥 로버츠’ ‘웨스트 윙’)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고도의 정치 기술로 대중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기도 한다. 전쟁이나 국익을 둘러싸고 백악관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검은 음모를 다룬 작품도 많지만 이 또한 내부의 애국자들에 의해 마무리되면서 스스로 자정능력을 갖췄음을 보여주기도 한다(‘왝 더 독’ ‘머더 1600’ 등).
미국 정치물의 특징은 양당제의 기존 정치 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미드열전’의 저자 문은실 씨는 “미국 정치 대중물은 정치인에 대해 비판적이긴 해도 정치체제에 대해선 매우 우호적인 편”이라며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그림) 이후 민주당의 정책에 우호적인 작품이 많아진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일본 젊고 천재적인 정치가에 대한 갈증
혁신적이고 동물적인 정치감각을 타고난 젊은 정치 신인이 정계에 혜성처럼 나타난다. 늙고 부패한 여당 중진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주인공을 함정에 빠뜨리지만 미국 대통령이 지지유세를 하거나(만화 ‘빛과 그림자’) 노래방에서 우애를 다진 야당 총재가 도와주는 등 (‘체인지’) 의외의 거물들이 움직여 사태가 해결된다. 그러나 대개 주인공은 정치 개혁을 완성하기 직전 불의의 사고나 병으로 쓰러지고 훗날을 기약한다.
영화평론가 정지욱 씨는 “일본 정치물에는 젊은 정치인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은데 일본 근대화를 이끈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그림)나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晋作) 같은 메이지유신의 지사들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됐다”며 “오랫동안 유지된 천황제의 영향으로 체제 자체를 뒤집는 혁명보다는 개혁 정도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