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6월 국회를 단독으로 소집하기 위한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와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20일 저녁 시내 한 식당에서 만나 협상을 벌였지만 양측 모두 기존 태도를 고수해 협상이 결렬됐다.
이 원내대표는 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포함한 5가지 등원 조건과 함께 ‘미디어법 처리 포기’까지 요구했고 안 원내대표는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원내대표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7월이 되기 전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더는 민주당을 기다릴 수 없게 됐다”며 “22일 의원총회를 열어 총의를 모은 뒤 22일이나 23일 국회 소집통지서를 내 24일이나 25일에는 한나라당 단독으로라도 국회를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단독 국회 개원을 위한 여론 조성에도 나섰다. 이번 주부터 ‘국민 속으로’를 모토로 내걸고 대국민 홍보 활동에 착수한다. 국회 공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민생을 내팽개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의 부담을 덜고, 국회 공전의 책임이 ‘야당의 보이콧’에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이다. 23일에는 당 소속 기초단체장 연찬회를 열어 야당의 국회 개회 전제조건을 반박하고 미디어관계법과 비정규직법 등 6월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30개 법안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자치단체장들의 도움을 얻어 우호적인 지역여론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자제했던 방송사 토론 프로그램에도 당 소속 의원들의 출연을 독려해 당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알릴 계획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국회를 소집할 경우 실력 저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22일 의총을 열어 향후 대응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현재 당내에는 강경론이 우세한 상황이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단독 국회 소집 움직임이 청와대의 강경 기류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와 관련한 검찰 수사결과 발표에 청와대가 강한 목소리를 낸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 민주당의 판단이다. 민주당 이 원내대표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청와대 분위기를 감안하면 안 원내대표가 (여야 협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 것 같다”며 “한나라당 의총 결과를 보고 민주당의 대응 방향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당 내에서는 6월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인 미디어법을 한나라당이 강행 처리할 경우 장외투쟁으로 번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여당에 항복하느니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투쟁이 불가피하다는 강경투쟁론이 대세라는 것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문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 8명도 이날 성명에서 청와대의 방송 비판을 ‘신종 MB(이명박)식 보도지침’이라고 규정하고 “미디어관계법 처리를 온몸을 던져서라도 저지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노영민 대변인은 “단독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미디어관계법 등 쟁점법안을 강행 처리하면 독재타도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 일각에서는 “끝까지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아 막판에 극적으로 국회 개회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