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북한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올해 3월 말경 정운과 함께 평양시 대성구역 아미산 자락에 있는 보위부 청사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보위부 핵심 간부들에게 "앞으로 김정운 동지를 보위부장으로 받들어 일을 잘해주길 바란다. 과거 나에게 그랬듯 목숨으로 김정운 동지를 보위하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청사를 떠나면서 약 8만 달러(약 1억300만 원) 상당의 고급 외제승용차 5대를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2007년에도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부부장이 당 행정부장으로 복권했다는 정보를 제보해 본보가 이를 단독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지난달 초 보위부 최정예 요원을 양성하는 평양시 만경대구역 소재 보위부 대학에도 정운과 함께 나타나 비슷한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위부는 주민의 사상동향을 감시하고 반(反)체제사범을 색출하며 해외공작 등의 임무를 수행한다. 각 지방에 지부가 있으며 군에도 각 대대에 대위급 요원이 파견돼 조직을 감시, 통제한다. 보위부장 자리는 1987년 이래 22년째 공석이었다. 김 위원장이 최고책임자 자리인 부장을 직접 겸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위부의 대외적인 수장은 부부장이 맡아왔다. 현재 수석부부장은 우동측 국방위원회 위원이다.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정운을 보위부장으로 임명했다기보다 자신이 갖고 있던 보위부장의 권한을 물려준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또 최근 각 기관 보위부 간부들은 상부의 지시를 정운의 지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최근 보위부의 위상이 급격히 높아지는 징후도 곳곳에서 관찰된다. 약 10만 명으로 추산되는 국경경비대가 늦어도 다음 달 보위부로 소속이 이관될 예정이라고 소식통은 전했다. 국경경비대는 1992년까지 보위부 소속이었다가 이후 인민무력부로 넘어갔다.
국경경비대 장교들은 처우가 나아질 것을 기대하며 소속의 보위부 이관을 기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군에 소속돼 있던 국경통행검사소 역시 올해 4월 이미 보위부로 소속이 바뀌었다.
소식통은 3월에 북한에 억류된 미국인 기자 2명에 대한 조사, 처벌 과정도 정운이 사실상 총지휘하고 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기자들은 당초 체포됐을 때 일선기관에서 조용히 사건이 마무리될 수도 있었다. 중국인이나 외국인 관광객이 우발적으로 국경을 넘는 사건이 워낙 많아 대체로 초보적인 조사를 하고 돌려보내기 때문에 이번 사건도 그렇게 처리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
하지만 갑자기 전 세계가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기자들이 보위부의 '작전'으로 납치됐다는 보도까지 나오자 아래 간부들이 당황해 이들을 평양으로 이송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평양에서 기자들 스스로가 피랍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게 하겠다는 것이 최초의 목적이었다는 것. 하지만 이후 이들은 대미협상용 흥정카드로 용도가 바뀌었다. 북한이 기자들에게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한 뒤 이례적으로 이들의 체포에서 재판까지 경위를 상세히 설명한 것도 납치 혐의를 벗기 위한 행위라는 게 소식통의 분석이다.
기자들을 체포했던 국경경비대원들에게는 며칠 전에 간첩을 체포한 것에 준한 훈장과 노동당 입당의 표창이 내려졌다고 한다. 소식통은 "현재 정운이 후계자라는 지위를 갖고 보위부뿐 아니라 노동당 조직지도부의 인사 업무에도 관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노동당 총비서 다음 직함인 조직비서 자리에 올라가 당을 장악하고 최고사령관 직책까지 차례로 물려받는 시나리오가 시작됐다는 게 그의 관측이다.
그런 이유인지 최근 북한에선 당원들을 대상으로 "과거 어려웠던 시절에 저지른 잘못을 다 고해하고 새 출발을 하라"며 사상검토 사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정운이 아버지의 수많은 권력 중에서 제일 먼저 보위부를 넘겨받은 것은 세습 과정에서 일어날 내부의 반발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그가 앞으로 권력 세습에 방해되는 세력을 어떤 방식으로 제거해나갈지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