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가 합법적 남북교류를 가장해 북한 공작원과 비밀리에 접촉하고 지령을 받아 일부 시민사회단체에 전파해 온 사실이 검찰과 경찰, 국가정보원의 수사 결과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정점식)는 24일 범민련 남측본부 이규재 의장(71)과 이경원 사무처장(43), 최은아 선전위원장(36·여) 등 3명을 국가보안법상의 특수잠입·탈출·회합, 금품수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공안당국은 지난달 7일 이들을 체포한 뒤 수사해 왔다.
○ “북한과 국내 단체 연락창구 역할”
검찰 발표에 따르면 범민련 남측본부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정치국 부장 박용이 운영하는 범민련 공동사무국과 휴대전화, e메일, 팩스 등을 통해 수시로 연락하며 구체적 활동방향에 대한 지침을 받았다. 올해 2월 28일 범민련 남측본부 회원 80여 명은 경기 여주군의 한 수련원에서 ‘제10차 공동의장단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이 사무처장이 공동사무국과 휴대전화로 수시로 연락하면서 범민련 북측본부, 해외본부 및 공동사무국과의 원격회의 방식으로 이뤄졌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 사무처장은 또 2004년 2월∼2006년 8월 공동사무국으로부터 범민련 남측본부 관계자 명의 계좌로 수차례에 걸쳐 1100만 원을 송금 받아 기관지 ‘민족의 진로’ 발행 비용으로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다.
범민련 남측본부는 국내 좌익단체와 북한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도 했다. 범민련은 2007년 7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의 부탁으로 “7·27(정전협정 체결일) 투쟁 때문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에서 답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의 팩스를 공동사무국에 보냈다. 북측도 같은 해 8월 1일 범민련을 통해 범청학련에 “결성 15돌을 축하하며 이 땅에 전쟁과 대결을 몰아오는 온갖 반통일 책동을 과감하게 배격하는 데 앞장서길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범민련은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보낸 “반미, 반한나라당 투쟁에 적극 나서라”는 지침을 국내 단체에 전파하기도 했다.
○ ‘범민련’ 소속 숨기고 방북 신청
범민련 남측본부는 2004년 11월 금강산에서 범민련 북측본부와 실무접촉을 열면서 범민련 이름으로 방북신청을 하면 당국의 허가를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공동사무국의 지시에 따라 통일연대로 소속을 바꿔 통일부로부터 방북 승인을 받았다. 이들은 금강산 회합에서 당초 방북 목적과 달리 북한 공작원과 접촉해 ‘북한의 핵 보유를 선전할 것’ ‘미군철수 운동 기간을 선정해 투쟁할 것’ 등의 지령을 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통일부가 검찰에 이들의 방북 허가 여부에 대해 의견을 요청했다”며 “검찰은 이들의 전력을 들어 ‘불허’ 의견을 냈지만 통일부가 자체 판단으로 승인을 해주었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후 2005년 9월과 2007년 11월에도 검찰의 반대를 무릅쓰고 범민련 관계자의 방북을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1990년 김일성 주석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연방제 통일을 위한 전 민족 통일전선을 형성하라”고 밝힌 이후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주도로 범민련이 출범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남측본부는 1997년 5월과 2003년 8월 각각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로 규정된 대표적인 북한 추종 성향의 단체로 분류된다. 이들은 2000년 첫 남북 정상회담 이후 조직 강령을 일부 개정해 대외적으로는 6·15공동선언 실천 단체를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주의 주장에 동조하는 활동을 벌여 왔다는 것이다. 공안당국은 2003년에도 범민련에 대한 대대적 수사를 통해 이종린 당시 의장 등을 국가보안법상의 간첩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한 바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