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정상에게 과거사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이 문제가 의제에 올랐을 때 각자 미온적으로 대응하면 자국민에게 비판을 받고 강하게 나가면 그동안 쌓았던 우호관계가 다시 악화된다. 이 때문에 과거사 문제를 두 정상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권 출범 초 이 대통령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인 성숙한 동반자’로 규정하면서 양국 관계는 가까워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일본이 중등교과서 해설서에 독도영유권을 명기한 것을 계기로 한일 셔틀외교가 중단되는 등 한일관계는 악화됐다. 아소 총리가 취임한 뒤 두 정상은 셔틀외교를 복원했지만 지금까지 과거사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채 협력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은 내년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어떤 식으로든 과거사에 대해 언급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방일을 앞두고 청와대 참모진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강제병합 100년과 관련해 원론적인 수준에서 언급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일관계가 미래지향적으로 새롭게 정립돼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준비하다 없던 일로 했다는 것. 이번 셔틀외교의 의제도 아닌 데다 당장 현안이 없는 상황에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해 봤자 큰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최근 방한한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를 만난 자리에선 “일본이 과거사 문제로 크게 결단하면 한국민들은 미래를 향해 큰 걸음을 내디딜 준비가 돼 있다”면서 “일본은 경제 대국이지만 과거에 대해 흔쾌하게 사과함으로써 더 선진 대국이 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운을 뗀 적이 있다.
도쿄=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