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군비전용 못하게 원화로 결제해야”
北 ‘원산지 위조’ 등 불법도
내달 개성3차협상서 적극적 공세 필요할 듯
북한 당국이 남측에서 얻은 달러를 군사부문 등에 전용(轉用)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대북경협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북 전문가들 사이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금융제재와 개성공단에서의 남북 당국 간 실무회담 등을 계기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들어진 경협 제도를 북한의 변화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 안팎에서 공격받는 경협
정부는 12일(현지 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 결의안 1874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이후 금융제재 조항이 경협과 충돌하지는 않는지를 검토해 왔다. 결의안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에 기여할 수 있는 모든 금융거래를 금지시켰다.
정부에 따르면 남한은 지난해 남북경협 등의 대가로 북한에 5억500만 달러를 줬다. 교역 대금으로 4억4000만 달러, 관광 대가 3680만 달러,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 2800만 달러, 사회문화 교류 대가 48만 달러 등이다. 문제는 북한이 이 돈을 어디에 쓰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측은 개성공단 임금(평균 월 75달러)을 근로자 개인이 아닌 북한 당국에 준다. 북한 당국은 이 중 1∼2달러(시장 환율인 달러당 북한돈 3000원으로 계산)와 배급표 등만 근로자에게 주고 나머지는 공적으로 착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 경협도 마찬가지다. 대남 경협 책임기관인 민족경제연합회(민경련)는 내각 소속이던 상급기관인 민족경제협의회(민경협)가 지난해 폐지된 이후 조선노동당이나 국방위원회 소속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민경련이 벌어들인 달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한의 공식 예산과 별개로 운영하는 ‘수령경제’의 한 부분으로 전용된다는 뜻이다. 수령경제는 김 위원장이 당과 군 등 권력기관을 동원해 개인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핵과 미사일 개발이 핵심 사업이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개발비용은 5억∼6억 달러, 핵 개발비용은 8억∼9억 달러인 것으로 정부는 추산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 등이 유엔 결의안을 근거로 남한의 대북 현금 지원을 문제로 지적하면 사실상 할 말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북한이 개성공단 실무회담에서 ‘안보비용’ 운운하며 이미 지급한 땅값을 5억 달러로 올려달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행태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문제를 강하게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 금융제재를 시작한 가운데 다음 달 2일 개성공단에서 남북 당국 간 3차 실무회담이 열린다.
○ “경협대금 달러가 아닌 원화로 주자”
전문가들은 다양한 개선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한 북한 경제 전문가는 “개성공단 근로자 임금을 북한 당국이 아니라 근로자에게 직접 주는 직불제를 도입해야 한다”며 “경협 기업들도 교역 상대방이 군수부문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근로자 임금 직불제는 유엔 결의안에 위배되지 않고 북한 당국이 아닌 주민들의 호주머니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안보 전문가는 “교역 대금과 근로자 임금 등을 달러가 아닌 한국 돈으로 주자”고 제안했다. 북한이 한국 돈을 받아 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한국에서 사도록 해 군비 전용을 막자는 것이다. 남북협력기금에서 일부 보조하면 북한은 싸게 물품을 구입할 수 있고 남한 기업들도 대북 ‘특수’를 누릴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이 전문가는 “1만5000명에 이르는 탈북자와 국내 이산가족들이 중국의 브로커를 통해 북한 가족에게 보내는 달러 송금도 양성화해 한국 돈으로 지원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북한 당국이 저지르는 경협 과정의 불법행위도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북한 민경련은 거액의 수수료를 받고 남한의 일부 악덕 기업이 ‘북한산 원산지 증명서’를 위조해 중국산 농산물을 북한산으로 둔갑시켜 국내에 반입하는 행위에 가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산 물품에 관세를 매기지 않는 남북교역 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관세청은 이 제도가 처음 시행된 2003년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총 26건, 533억 원어치의 위조 북한산 농산물을 적발했다. 경협 기업인들은 또 북한이 불법적인 사업 성사비를 요구하고 물품을 강매하거나 계약조건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계약 위반과 불이행을 일삼고 있다고 호소한다. 한 당국자는 “북한 당국은 기본적인 국제 거래질서부터 지켜야 할 것”이라며 “경협 기업들도 북한의 장밋빛 거래조건에 현혹되지 말고 북측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