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일 ‘미사일 도발’이 2006년 미국 독립기념일 때와 다른 점은 장거리미사일을 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한은 2006년 7월 5일 강원 안변군 깃대령기지에서 중단거리 미사일 6발과 함께 함북 화대군 무수단리 기지에서 대포동2호로 추정되는 장거리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는 북한이 이번에도 미 독립기념일을 겨냥해 대포동2호를 개량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할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북한은 5월 말 평양 인근의 산음동 병기연구소에서 ICBM을 열차로 실어 평북 철산군 동창리에 건설된 새 발사기지로 옮겨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군 정보당국은 현재까지 동창리와 무수단리 기지에서 장거리미사일의 발사 징후를 포착하지 못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4일 미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이 발사대 조립단계에 들어가지 않았고 연료주입에도 며칠이 소요돼 발사까지 몇 주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당분간 ICBM 발사를 ‘마지막 카드’로 남겨둘 것으로 보고 있다. 올 들어 장거리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우라늄 농축선언 등 잇단 초강경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더욱 거세지자 북한은 더 이상의 ‘벼랑끝 카드’가 실효를 거두지 못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과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이번만큼은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양보하지 않겠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어 북한의 협박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북한은 향후 미국의 대북정책과 북-미관계의 진행상황을 봐 가며 최적의 시기를 골라 추가 핵실험과 연계해 ICBM을 발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ICBM의 기술적 결함 가능성에 대한 얘기도 있다. 북한이 대포동2호를 개량한 것으로 추정되는 ICBM의 위협이 현실화되려면 발사 후 미 본토의 타격 가능성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이 이를 입증할 만한 기술적 수준에 도달하지 못해 발사를 계속 늦추고 있다는 것이다. 군의 한 고위 소식통은 “북한의 ICBM이 2006년 7월에 발사된 대포동2호처럼 발사 직후 추락하는 등 실패할 경우 최후의 대미압박 카드를 날려버리는 꼴이 될 것”이라며 “이런 우려 때문에 4일 성공률이 높은 중·단거리미사일을 집중 발사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필립 골드버그 전 볼리비아 주재 미국대사가 이끄는 미국의 대북제재 전담반은 5일 말레이시아에서 당국자들과 만나 대북제재의 실효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워싱턴의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말레이시아는 북한이 오랫동안 거래를 해 온 주요 교역상대국”이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 1874호를 이행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담반에는 대북 금융제재를 주도하는 대니얼 글레이저 재무부 부차관보가 포함됐다.
이와 관련해 연합뉴스는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말레이시아에 북한의 수상한 계좌가 몇 개 있는 것으로 밝혀져 미국 행정부가 이에 대한 봉쇄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