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균형발전정책, 지방거점 해체 불러” ‘16개 시도 n분의 1로 발전’ 집적 무너뜨려 모두 죽는 길 지자체에 지역개발 권한 줘 특성화 광역경제권 육성을
《“지난 30년 동안의 이른바 ‘국가균형발전정책’ 때문에 지역의 거점은 모두 해체됐고, 수도권은 더 집중됐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9일 서울 중구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눠 먹기식’ 균형 대신 광역경제권별 거점 지역을 육성해야 전체적인 균형 발전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경기개발연구원 주최로 열린 ‘국가발전을 위한 대도시권 성장전략’ 세미나에 앞서 가진 인터뷰에서 좌 원장은 “모든 지역이 균등하게 잘살 수 있다는 균형발전 이념은 오히려 정반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최근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모니터그룹의 공동 조사 결과 경인권은 국내에서 가장 집중도가 높지만 각종 규제로 인해 세계 경쟁 대도시권(메가시티리전)에 비해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음은 좌 원장과의 일문일답. ―경인권의 성장을 억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우물 안 경쟁’을 벗어나야 한다는 견해가 맞서고 있다. “모든 발전은 집적을 통해 이뤄진다. 경인권의 집적은 너무 자연스러운 결과다. 더 집적돼야 한다. 경인권, 부울경권, 호남권 등에 거점이 생기고, 서울의 강남 같은 곳이 전국에 더 많이 생기는 게 진정한 균형발전이다. 16개 시도를 ‘n분의 1’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은 집적을 해체해 모두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수도권정비법 등 성장 억제 기조의 규제에서 성장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성장관리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수도권정비법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 특정 지역을 아름답게 가꾸게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지방정부에 지역개발 권한을 줘서 지역에 적합하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잘하는 곳은 지원해 주고, 잘못하면 재정적자로 파산하는 곳이 나오게 해야 한다.” ―역대 정부마다 ‘국가균형발전정책’을 폈는데 결과는 실패인 것 같다. “지난 30년 동안의 이른바 ‘국가균형발전정책’ 때문에 지역의 거점은 모두 해체됐고, 수도권은 더 집중됐다. 특히 지역의 거점인 광역시와 도를 분리한 것은 매우 잘못한 일이다. 광역시와 도가 모두 어려워졌다. 행정구역 재편뿐만 아니라 예산 배분 등이 모두 ‘n분의 1’로 이뤄졌다. 국가가 전체적으로 하향 평준화되고 있는 것이다.” ―집적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 “집적 없이는 발전이 없다. 대만이 한 단계 도약하지 못하는 것도 대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일부 부작용이 있다고 삼성을 없앨 수는 없다. 오히려 삼성 같은 대기업을 여러 개 만들면 된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획일적인 균형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충남이 발전하는 건 경기도 때문이다. 경기도는 서울이 없으면 발전하기 어렵다. 이게 집적의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광역경제권이 힘을 갖는 것이다.” ―광역경제권에 대해 일부 지역에선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광역경제권은 국내 지역 간 경쟁이 아니다. 지금 얘기하는 광역경제권은 해외 광역권과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수도권과 경쟁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그래서 차별화, 특성화가 필요하다. 중소기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이 못하는 것을 해야 한다.” ―광역단위 지역 개발을 위해 중앙정부의 권한을 과감하게 이양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자기들끼리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아직 우리는 진정한 지방자치가 아니다.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정책을 입안해 추진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광역경제권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효율적인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한데…. “쉬운 문제가 아니다. 지방정부가 주도권 경쟁을 하면 안 된다. 국민이 잘되면 좋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누가 먼저 제안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방정부 간 협력이 잘되는 사업에 지원을 더 해주는 시스템을 강구해볼 수도 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 좌승희 원장은 국내 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3년 한국은행에 입사한 그는 박사 학위 취득 이후 미국 연방준비은행 경제연구관을 거쳐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으로 일했다. 1997년부터 8년 동안 한국경제연구원장 재직 때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한 정책개발에 주력했고 퇴임 후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한국경제론을 가르쳐 왔다. 현재는 대통령자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경인권 경쟁력 키우려면 고부가 산업 클러스트로” 대도시권 성장전략 토론회▼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경인권(서울·인천·경기)의 기능을 강화하고 지역 대도시권의 성장을 촉진하는 국가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9일 서울 중구 명동 전국은행연합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경기개발연구원 주최의 ‘국가 발전을 위한 대도시권 성장전략’ 정책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됐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축사에서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순위가 15위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며 “만들어진 거점을 다 해체해서 분산하는 정책은 지속적인 GDP의 하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지사는 이어 “소소한 정책은 지방에서 알아서 하는 분권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모니터그룹 박영훈 부사장은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공동으로 세계 20개 메가시티리전(MCR·광역경제권)의 경쟁력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소개했다. 평가 결과 미국 뉴욕권과 영국 런던권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경인권은 11위, 부울경권(부산·울산·경남)은 14위를 차지했다. 박 부사장은 “경인권을 10년 내에 세계 5위권으로 진입시키려면 고부가가치산업 중심의 클러스터와 지역 구성원이 참여하는 거버넌스(지역 내 의사결정체제)를 구축하고 광역경제권 간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부울경권은 지역 중심도시인 부산시의 기능을 강화하고 주변 지역과의 상호 연계성을 높여야 동북아 지역의 MCR로 육성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